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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우린 같은 계절을 살고 있을까

입력 2017-06-30 05:05:04


작가는 신음이 나는 쪽으로 조용히 몸을 기울인다. 이어 신음의 주인을 찾아 그 손을 가만히 잡는다. 소설가 김애란이 네 번째 단편소설집 ‘바깥은 여름’(문학동네)에서 일관하는 태도다. 수록된 7개 단편에는 모두 어마한 상실과 고통을 겪은 이들이 나온다. 제목 ‘바깥은 여름’은 등장인물이 머물고 있는 계절이 눈보라 치는 겨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수록된 ‘풍경의 쓸모’엔 이런 문장이 있다. “유리 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그런.” 김애란은 이 스노볼처럼 고통의 시간 안에 갇힌 이들을 바라본다.

여는 작품은 ‘입동’(立冬). 젊은 부부가 지긋지긋하게 이사를 다니다 어렵게 집을 장만해 이사를 간다. 아들 영우는 출퇴근 차량을 보고 “부릉부릉이 엄청 많아. 엄청 멋있어”라며 새 집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부부는 이사한 봄,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량에 어린 아들을 잃는다. 꽃무늬 도배지를 사고도 도배를 못한다. 부부는 겨울 초입에야 벽지를 바른다.

부부는 도배지를 붙이다 한 모퉁이에서 영우의 글씨를 발견한다. 글씨를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쓰다만 이름. 아내는 오열한다. “(도배지의) 그 꽃이 마치 아내 머리 위에 함부로 던져진 조화(弔花)처럼 보였다.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36쪽)

‘입동’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겨울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이다. 상실의 아픔은 ‘노찬성과 에반’으로 이어진다. 소년 노찬성은 트럭 전복으로 아버지를 여읜데 이어 강아지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건너편’에선 노량진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청년 이수가 크리스마스에 연인 보화와 이별한다.

소설집을 닫는 작품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물에서 제자를 구하다 숨진 교사의 아내가 나온다. 아내는 시리(Siri·애플의 음성인식 서비스)에게 고통과 죽음에 대해 묻고, 시리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라고 되묻는다.

작가는 작품 어디에서도 세월호를 언급하지 않지만 주인공들의 ‘안’은 세월호 참사의 고통에 닿아있다. 김애란은 작가의 말에서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고 한다. 모두의 상처일 수 있는 사회적 참사에 신중하게 조응하는 작가의 시선이 다사롭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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