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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아날로그, 디지털 시대의 핫트렌드

입력 2017-06-30 05:05:03


“디지털화가 가능한 사물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듯했다. 잡지는 온라인으로만 존재할 것이고 모든 구매는 웹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며 교실은 가상공간에 존재할 것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디지털 유토피아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터미네이터와 마주칠 것처럼 보였다.”

책에 담긴 저 문장에 딴죽을 걸긴 힘들 것이다. 대부분 저렇게 생각하지 않았던가. 아날로그의 세계가 디지털의 거센 파도에 밀려 곧 운명을 다할 것으로 여기지 않았느냔 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세계 곳곳에서는 아날로그의 승전보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LP 시장이 살아났고 오프라인 서점도 증가 추세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아날로그의 반격’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어 아날로그가 지닌 파워의 실체를 조명한다.

저자는 뉴욕타임스 등에 칼럼을 기고하는 캐나다 저널리스트다. 일단 용어 정리부터 하자. 저자가 사용하는 아날로그는 컴퓨터의 이진 코드인 ‘0’과 ‘1’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다. 풀어쓰자면 컴퓨터나 인터넷 없이도 작동 가능한 실체를 갖춘 모든 것을 가리킨다.

책은 두 갈래로 나뉜다. 전반부에선 아날로그 제품의 재도약을 다룬다. 후반부에서는 출판 유통 제조 교육 분야에서 아날로그에 기반을 둔 아이디어나 전략이 시장에 어필한 사례를 살핀다. 현재 벌어지는 ‘아날로그의 반격’을 실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첫머리에 등장하는 LP가 대표적이다. LP는 먼지가 잘 들러붙고 스크래치가 생기면 턴테이블 바늘이 튀어 올라 음악을 듣기 힘들다. 보관하는 데 공간도 많이 차지한다. 운전을 하거나 조깅을 할 때도 들을 수 없다. 그런데 무슨 까닭에선지 LP는 요즘 각광받고 있다. 미국음반산업협회 통계에 따르면 2007년 99만장 수준이던 미국 내 LP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해 2015년 1200만장을 넘어섰다. LP의 인기 요인은 뭘까. 저자는 “돈을 주고 레코드판을 얻었기 때문에 그 음악을 진정으로 소유했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고 분석한다.

미국 뮤지션 잭 화이트가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도 참고할 만하다. “LP를 들을 때는 무릎을 꿇고 바늘의 처분만 기다려야 하죠. 돌아가는 레코드판을 지켜보는 것은 마치 다들 둘러앉아 캠프파이어를 지켜보는 것과 같아요. 최면에 걸리는 기분이에요.”

특히 젊은이들에게 LP는 더 이상 구닥다리 제품이 아니다. 2015년 영국의 LP 주 소비층은 18∼24세였다. 이들에게 LP를 듣는 건 ‘쿨’하고 세련된 행위였다.

반면 디지털은 왠지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면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폴라로이드 필름 생산에 뛰어든 회사 ‘임파서블 프로젝트’ 설립자 플로리안 캡스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 사람들은 디지털 사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화질이라서 화질이 개선되기만 하면 디지털이 승리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디지털 사진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실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더 이상 가족 앨범은 없고 인화된 사진도 없어요. 손으로 만지거나 흔들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지요.”

아날로그 산업이 가진 수익성을 재조명하거나 종이 매체의 미래를 낙관하는 내용도 눈길을 끈다. 물론 아날로그가 디지털을 밀어내고 과거의 영광을 완전히 회복할 것이란 얘기를 기대해선 안 된다. 저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2인3각 경기를 하듯 어깨를 겯고 문화와 산업의 미래를 개척할 것으로 내다본다. 저자가 종이의 미래를 낙관하면서 쓴 아래와 같은 고백을 듣는다면 독자들 역시 아날로그의 힘을 재고하면서 비슷한 전망을 하게 될 듯하다.

“나는 한때 모든 유형의 서점에서 일 년에 수십 권의 책을 사들이는 서점 중독자였다. 그 뒤 아마존에서 책을 주문하기 시작하면서 나 자신이 예전만큼 책이나 독서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독서에 대한 애정이 사라져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책을 입수하는 경로가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독서의 매력이 일부 사라졌던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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