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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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영석] 18년 만의 씨랜드

입력 2017-06-29 17:50:01


1999년 6월 30일 새벽 0시30분. 경기도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3층짜리 컨테이너 건물 301호에는 유치원생 18명이 자고 있었다. 모기향에서 시작된 불은 이불과 집기로 옮겨붙었다. 아이들은 급히 창가로 대피했다. 소방차가 도착한 것은 불이 난 지 한 시간여 지난 새벽 1시41분. 화마는 그새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4명 등 23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한 엄마는 “우리 애 머리띠야”라며 오열했다. “엄마, 잘 다녀올게”라는 딸의 마지막 말만 계속 되뇌었다. 시뻘건 불길 속에서 엄마와 선생님을 찾았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18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저려온다.

언제나 그랬듯 안전불감증이 부른 참사였다. 각종 불법 속에 지어진 가건물, 공무원들의 비호, 정원 12명인 방에 18명을 재운 수련원, 골든타임을 놓친 화재 진압까지. 제대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섯 살 아들을 잃은 여자 하키 국가대표 출신 엄마는 각종 훈장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씨랜드 대표와 유치원 원장의 징역 1년형 처벌을 끝으로 씨랜드 화재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그 후 통학버스에서, 태안 해병대캠프에서, 세월호 등에서 우리 아이들은 계속 희생되고 있다. 씨랜드 사건이 모습을 달리하며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돈벌이 대상이고, 안전은 비용절감 대상인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사고 이후 며칠간 호들갑만 존재할 뿐이었다.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책은 관심 뒷전이었다. 너무나 쉽게 망각하는 사회다.

씨랜드 사건 유가족들이 30일 사고 현장을 찾는다. 서울 어린이안전체험관에서 열리던 추모식이 사고 이후 처음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공간이 조성된다. 살아있었다면 20대 중반일 19명의 아이들. 상상도 못할 공포 속에 죽음을 맞이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또 다른 모습의 씨랜드 사건이 없는 그날까지.

김영석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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