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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종의 환자 샤우팅] 항암신약의 생존연장 효과가 2.1개월이라니…

입력 2017-07-02 17:15:01


나는 최근 ‘고가 항암 신약의 재정독성 해결방안’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했다가 충격적인 발표를 들었다.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FDA가 승인한 48개 항암 신약의 생존기간 연장 효과를 조사해 봤더니 기존 항암제에 비해 평균 2.1개월에 불과했다”는 내용이다.

2001년 세계 최초 표적치료제 백혈병 신약 글리벡 시판 이후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은 폐암 신약 이레사, 유방암 신약 허셉틴 등 표적항암제가 줄줄이 출시됐다. 최근에는 전체가 아닌 일부 암환자이기는 하지만 효과와 부작용에 있어 표적항암제에 비해 훨씬 개선된 면역항암제도 등장했다. 그런데도 항암 신약이 기존 항암제에 비해 평균 2.1개월 밖에 생존기간을 연장하지 못한다는 주장에 나는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다.

나의 아내는 16년 전인 2001년부터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투병중이다. 과거에는 조혈모세포(골수)이식을 받지 않으면 5년 이내 대부분 사망하는 무서운 질환이었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지금 만성골수성백혈병의 10년 생존율은 90%가 넘는다. 지난 6월26일에는 1세대 글리벡과 2세대 스프라이셀, 타시그나, 슈펙트로도 치료가 되지 않았던 T315I 염색체 내성마저 치료하는 3세대 아이클루시그도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이제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는 표적항암제만 꼬박꼬박 잘 복용하면서 건강관리까지 잘 하면 평생 자기 수명만큼 살 수 있게 됐다. 백혈병 치료제 이외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골수이형성증후군 치료제, 림프암 치료제 등으로 치료 받고 1년 이상 또는 5년 이상 장기생존하고 있는 혈액암 환자들은 상당수 존재한다. 표적항암제 치료로 삶의 질이 대폭 개선되어 직장생활, 결혼생활 등을 하면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혈액암 환자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항암 신약의 생존기간 연장 효과가 2.1개월 밖에 안 된다는 팩트(fact)에 대해서는 반드시 체크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만일 이것이 진실이라면 암치료 의사들이나 항암제 관련 기사를 쓴 기자들은 암환자들과 국민들에게 암치료 효과에 대해 그동안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왔고, 정부도 잘못된 암치료 정보로 잘못된 약가제도를 설계해 암환자들과 국민들에게 큰 경제적 부담을 준 꼴이 되기 때문이다.

항암 신약의 생존기간 연장 효과가 정말 2.1개월 밖에 안 된다고 가정하고, 한번 해법을 찾아보자. 첫째 글리벡·허셉틴 등과 같이 대체제가 없으면서 생명과 직결된 탁월한 효과의 극소수 항암 신약에 대해서는 식약처 허가 직후 곧바로 건강보험 급여화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신약 긴급 건강보험 등재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생존기간을 평균 2.1개월 밖에 연장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항암 신약 개발 제약사가 정부에 고가의 약값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해당 암환자들도 약값을 인하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인 경제성 평가(약값이 효과 대비 비용이 적합한지 평가)를 무시한 건강보험 급여화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대다수의 항암 신약이 평균 2.1개월 생존기간 연장 효과 밖에 없다면 의료진은 말기암 환자에게 항암 신약 치료를 권유하기보다는 진료시간을 대폭 늘려 양질의 상담을 전제로 항앙 신약 치료를 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와 함께 늘어난 진료시간과 양질의 상담에 대해서는 의료수가를 통해 충분히 보상하는 제도개선도 해야 한다.

최근 의사가 사전에 치료방법을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한 후 동의를 받는 기존 방식(Informed consent)을 넘어 환자와 의사가 함께 최적의 치료방법을 결정하는 방식(Sharing Decision Making: SDM)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의사가 말기 암환자에게 항암치료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차이점, 치료 가능한 여러 항암제의 장단점 등에 관한 정보를 환자의 눈높이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제공하고, 환자의 의견, 가치, 선호도, 경제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환자와 함께 항암치료를 할지 여부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항암제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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