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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한민수] 확인해봤어?

입력 2017-06-30 17:30:01


20년도 더 됐다. 수습기자 시절 유명 사이비종교 전문가가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피살됐다. 현장에서 피해자가 수상한 남자와 심야에 언쟁을 벌였다는 얘기를 제삼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곧바로 선배 기자에게 보고했는데 돌아온 답은 “네가 직접 들었어? 확인해봤어?”였다. 육두문자가 섞인 질책을 받고 새벽까지 목격자를 찾기 위해 피해자 주변 아파트를 헤집고 다닌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2001년 사회부 사건팀장으로 일할 때는 후배 기자로부터 관악산 인근에 작은 송아지만한 길고양이가 출몰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반신반의하면서도 확신에 찬 후배 말을 믿고 출고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과장된 기사가 맞는 것 같다. 그때 “네가 눈으로 직접 확인해봤어?”라고 되묻지 않은 후회가 남아 있다.

국민의당의 ‘조작된 제보’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아들 준용씨의 특혜채용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당 당원 이유미씨가 카카오톡 캡처 화면과 음성파일을 조작해 이준서 전 최고위원에 제보했고, 이 내용이 당 기구를 통해 ‘확실한 제보’라며 폭로된 사건이다.

신문의 경우 통상 ‘현장기자의 보고→팀장(반장)→내근 데스크(차장)→부장→부국장→편집국장’의 단계를 거쳐 지면에 기사가 실린다. 단계가 축소된다고 해도 ‘현장기자→부장→국장’의 3단계는 필수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꼭 묻는다. “확인해봤어? 확실한 거야?”라고. 이른바 게이트키핑(gate keeping)이다. 이게 생략되거나 부실하면 오보나 과장·왜곡된 기사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만약 이씨가 제보 내용을 보고했을 때 국민의당 윗선의 누군가가 그 순수성을 의심하며 “네가 직접 (제보자에게) 들었어? 확인해봤어?”라고 한 번만이라도 되물었으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과 같은 엽기적인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은 한국 정치사의 제보 관행에 중대 전환점이 될 것이다. 선거에서 반드시 이기고 싶고, 상대방에게 타격을 입히고 싶은 유혹이 들더라도 아무 제보나 덥석 발표할 수는 없을 게다. 특히 당내 누군가는 “확인해봤어?”라고 물어보지 않을까.

글=한민수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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