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조용래 칼럼] 주도권 외교, 동아시아에서 사는 법

입력 2017-07-02 19:20:01


지난달 23일 세미나 참석차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 늘 그렇듯 입국하자마자 신문부터 살펴보는데 한 광고가 눈에 띄었다. 전국신속경보시스템(J앨러트)을 소개하는 정부 광고다.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날아올 것에 대비한 경보음 발송과 피난 요령 등이 내용이다. 그날 일제히 두루 게재된 모양이었다.

그뿐 아니다. ‘탄도미사일 낙하 시 행동’이란 30초짜리 동영상도 NHK를 비롯한 전국 43곳 방송국에서 그날부터 상영하기 시작했다. 4억엔 가까이 들였다는 일본 정부의 홍보 행보가 기가 차다. 의도적인 호들갑, 과장된 정부 광고다.

우리가 둔감한 건가. 남북이 대치하는 휴전선에서 불과 수십㎞ 거리인 서울에서조차 볼 수 없는 방공 피난요령을 아베 신조 총리의 일본에서 마주할 줄은 몰랐다. 일본의 과도한 준비와 우리의 느긋함이 대비되지만 본질은 북한위협론을 부추기려는 일본의 행보다.

북한위협론이 고조될수록 일본 사회는 평화헌법 개정의 당위성, 자위대 강화의 필요성 등에 수긍하게 될 터다. 아베 총리의 특정 사립학교(森友·加計學院) 지원 의혹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을 만회하려는 의도가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일본 정부는 자기 기준에서 의도한 바대로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주적인 내치와 주도적인 외교는 주권 국가의 당연한 권리이고 바람직한 모습이다. 일본의 행보가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그들의 몫일 뿐이다. 책임 또한 그들이 져야 한다. 비판과 평가는 자신에게로 향할 때 빛을 발한다. 핵심은 현재 우리가 내치와 외교를 자주적이고 주도적으로 임하고 있느냐에 있다.

오는 7일은 중일전쟁 발발 80주년이다. 북경 외곽 노구교(蘆溝橋) 부근에서 야간훈련 중이던 일본군과 중국 제29군 사이에 벌어진 총격전이 전면전으로 확산된 ‘노구교사건(7·7사변)이 터진 것이다.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국제연맹을 탈퇴함으로써 역내 서구제국주의 간의 협조적 제국주의 질서를 박차고 나왔었다.

일제의 독자노선은 전쟁과 침략으로 이어졌다. 41년 진주만 공격을 통해 전선이 태평양으로 확대됐을 때도 그들은 자주외교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 끝은 파멸이었다. 패전국 일본은 전후 오랫동안 전승국의 맹주인 미국의 그늘 아래 종속적 입장을 이어왔다. 그러던 일본이 탈냉전과 더불어 자주적 노선을 다시 조금씩 키워왔다. 우익의 목소리가 커지고 전후 체제라고 할 수 있는 평화헌법에 대한 개정 문제가 본격화되고 있는 배경도 바로 그것이다. 최근 중·일 대립도 일본의 자주외교와 무관치 않다. 물론 2008년 이후 중국의 적극적·공세적인 대외정책 변화도 한몫했다고 본다.

중국은 78년 개혁개방 이후 국제평화를 앞세우고 자신을 낮춰가며 경제성장에 초점을 뒀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열강이 경제난을 겪을 때 중국은 세계의 공장, 세계의 시장으로 떠올랐다. 더불어 미·중 양강시대, G2 등의 말이 나돌면서 중국은 슬그머니 대륙굴기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의 국제전략가 에드워드 룻왁은 ‘차이나 4.0’(2016, 문예춘추)에서 한 국가의 자주적이고 주도적인 전략은 종종 착각을 일으킨다고 진단한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중국의 ‘굴기 전환’을 꼽는다. 군사력과 자본력으로 인접국을 압박하면 뭐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되리라는 것은 착각이었고 그로 인해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상대의 대응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낙관해서는 자주외교, 주도권 외교는 파멸을 면키 어렵다. 룻왁은 또 다른 실패 사례로 일본의 진주만 공격,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거론한다. 현실로 존재하는 미국과 이라크를 상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바라는 미국관(觀), 이라크관을 만든 것이 결국 실패를 불렀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각국 모두가 나름 주도적이고 자주적인 대내외 정책을 구사해 왔지만 그것이 늘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한국이 나아갈 방향,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역시 자주적이고 주도적인 전략에서 출발한다. 다만 그것이 일방적인 가치나 희망 섞인 기대를 앞세워선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난 주말 문재인 대통령은 첫 한·미 정상회담을 잘 마무리했다. 공동성명문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했다. 한국의 주도권 외교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시련도 적지 않을 테지만.

감정보다 실리가, 당위보다 지혜가 절실하다. 무엇보다 전략적 착각을 경계해야 한다. 상대는 결코 우리가 바라는 대로만 움직여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