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한마당-강주화] 호손과 하루키

입력 2017-07-02 19:25:01


미국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은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란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헤스터 프린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고 그 벌로 간통을 뜻하는 ‘A’(adultery)자를 가슴에 평생 달게 된다. 헤스터는 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끝까지 발설하지 않고 상대였던 젊은 목회자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설교를 계속한다.

이 소설은 호손에게 선조가 저지른 일에 대한 대속(代贖)의 의미가 있었다. 호손의 고조부 존 호손은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있었던 ‘세일럼 마녀 재판’의 재판관 7명 중 한 사람이었다. 민간신앙을 전파하던 한 여성이 마녀로 지목되면서 185명이 투옥됐고 19명이 교수형 선고를 받았다.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하는 참혹한 사건이었다.

“신이 너희 가문에 저주를 내릴 것이다.” 선고를 받은 한 여성이 존을 향해 외친 소리였다. 호손이 이 저주를 푼 방식은 문학이었다. 조상의 죄를 숨기고 싶은 마음과 참회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다 후자를 선택한다. 그 결과가 죄와 구원의 문제를 첨예하게 다룬 명작 ‘주홍글씨’였다. 호손은 죄의식이 문학적 자원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중국 등 아시아에서 무고한 이들을 학살한 역사를 가진 일본. 근대 일본 작가들 역시 반전(反戰)문학을 선보였지만 패전 후 국수적인 분위기에 피해자 의식을 내세운 작품이 주를 이뤘다. 속죄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풍토 때문에 오에 겐자부로가 천황제를 비판한 소설 ‘정치소년 죽다’도 1960년대 금서였다. 반세기가 넘게 지난 5월 말에야 이 소설이 일본에서 출판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래도 일본을 깨울 ‘속죄문학’ 기대를 접을 순 없다. 겐자부로는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일본이 아시아인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며 “(일본은) 전쟁 중 잔학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상실의 시대’로 유명한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난 2월 일본에서 나온 하루키의 신작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가 12일 국내에 출간될 예정이다.

일본 우익은 이 소설에 난징 대학살과 그 피해가 언급됐다는 이유만으로 하루키를 맹비난했다고 한다. 하루키는 그동안 줄곧 일본이 과거사를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해 왔다. 이런 작가적 양심이 면면히 이어진다면 언젠가 일본판 ‘주홍글씨’를 볼 날이 오지 않을까.

글=강주화 차장, 삽화=이영은 기자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