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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인의를 찾아서 -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폐이식클리닉] 국내 폐이식 절반 도맡아

입력 2017-07-03 21:25:01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센터 폐 이식 클리닉 주요 의료진. ①흉부외과 백효채 교수 ②호흡기내과 김송이 교수 ③감염내과 정수진 교수 ④호흡기내과 박무석 교수 ⑤흉부외과 병동 조미영 파트장 ⑥중환자실 김은성 파트장 ⑦장기이식센터 김아네스 코디네이터 ⑧흉부외과 이진구 교수 ⑨호흡기내과 병동 김향숙 파트장 ⑩중환자실 김정연 파트장 ⑪호흡기내과 송주한 교수 ⑫마취통증의학과 우경윤 강사 ⑬호흡재활팀 김기범 물리치료사 ⑭호흡기내과 박지은 교수. 연세대의료원 제공


“다시 찾은 소중한 호흡, 건강하게 지켜가겠습니다. 파이팅!” 황톳길을 돌아 온 폐 이식인과 그 가족의 힘찬 다짐 구호가 울려 퍼졌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센터 폐 이식 클리닉(팀장 백효채·흉부외과 교수)에서 폐 이식 수술을 받고 새 삶을 선물 받은 사람들 얘기다.

세브란스병원 폐 이식 클리닉은 지난 4월 29일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산성에서 폐 이식인 50여명과 가족 80여명이 산성 주위 오름 산책로 약 3㎞를 의료진과 함께 걸으며 건강을 확인하고 서로 격려하는 자리를 가졌다. 2015∼2016년에 이어 올해로 3번째 열린 ‘폐이식인과 산행의 만남’ 행사다.

올해는 이식 수술을 전담하는 흉부외과 백효채 이진구 교수팀 외에도 호흡기내과 박무석 김송이 교수팀, 김아네스 장기이식코디네이터와 조미영 간호사 등 수술 전후 환자들과 직접 교감하는 의사, 간호사, 코디네이터 등 의료진 10여명도 자리를 같이 했다.

이정화(39·여) 씨는 “폐가 굳어 숨쉬기조차 어려워 온종일 누워만 지내다 폐 이식 수술을 받고 숨 쉬는 행복을 되찾았다. 산행을 하며 신선한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니 감회가 남다르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씨는 가습기 살균제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다가 폐 이식 수술을 받고 새 삶을 찾은 뒤 6년째 몸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이씨는 “가습기 살균제 후유증을 극복하고 매번 산행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말로 값지고 꿈같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다학제 폐 이식 협진팀 운영

의식하지 않고 들고 내쉬는 편안한 숨. 누군가에게는 그 한 번이 극심한 고통이다. 이들에게 숨을 선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센터 폐 이식 클리닉 흉부외과 백효채 교수팀이다.

백 교수는 같은 과 이진구 교수와 함께 국내 폐이식 개척 및 선구자로 불린다. 국내 전체 폐 이식 건수의 절반가량을 도맡아온 덕분이다.

세브란스병원은 이들을 중심으로 호흡기내과 박무석 김송이 송주한 교수팀과 감염내과 정수진 교수팀이 지원하는 다학제 폐 이식 협진팀을 운영 중이다. 중증 호흡곤란 폐질환 환자들에게 새 삶을 선물하기 위해서다.

세브란스병원 폐 이식 클리닉의 최대 강점은 ‘경험’이다. 국내 폐 이식 환자 두 명 중 한 명은 이곳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효채 이진구 교수팀은 정확한 데이터 집계가 시작된 2000년 이후 5월말 현재까지 국내에서 이뤄진 폐 이식 수술 419건 가운데 208건을 합작했다.

특히 백 교수는 대한민국 폐 이식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1996년 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할 때 현재 분당차병원으로 옮긴 이두연 교수와 함께 국내 최초로 일측 폐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백 교수는 이 공로로 지난 3월28일, 대한의학회가 수여하는 바이엘임상의학상을 수상했다. 백 교수는 “개인의 성과가 아니라, 전 의료진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위치에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성공적인 이식을 위해 함께 협력해 온 결과라 생각한다”면서도 “흔치 않은 폐 이식 수술을 200건 이상 시술했다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성과”라고 자평했다.

풍부한 경험, 긴밀한 협력 강점

요즘 백효채·이진구 교수팀이 중증 폐질환자 1명을 폐 이식으로 살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15분(5시간15분)이다. 2000년대 초반 400분(6시간40분) 이상 소요됐던 것과 비교하면 수술 시간이 1시간25분(85분)가량 단축된 셈이다.

임상경험이 쌓이면서 요령이 생기고, 직접 수술을 집도하는 백효채·이진구 교수와 손발을 맞추는 전임의 전공의 간호사 등이 그만큼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세브란스병원 폐 이식 클리닉 의료진이 이처럼 손발을 잘 맞추게 된 것은 무엇보다 타기관이 쉽게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술경험을 통해 다학제 진료 시스템을 단단히 구축해온 게 큰 보탬이 됐다.

실제 이들은 흉부외과 백효채·이진구 교수팀은 물론 간호국, 장기이식센터, 호흡기내과, 감염내과, 심장내과, 영상의학과, 재활의학과, 중환자실, 마취통증의학과, 물리치료실, 정신건강의학과, 신경과, 치과 등 폐 이식에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의료진은 물론 중환자실과 사회사업팀까지 언제든지 모두 수술 지원에 나설 수 있는 24시간 긴급출동채비를 갖춰놓고 있다.

새로운 수술 영역 여는 선구자

20년 이상 이렇게 손발을 맞춰온 이들의 임상경험은 남다른 수술 실력과 많은 연구 성과를 낳았다.

백 교수팀이 2013년 이후 폐이식 수술 시 인공심폐기(CPB)를 쓰지 않고 체외막산소화장치(ECMO·에크모)를 대신 사용하는 것은 그중 한 사례다.

백 교수는 “이식 수술 시 CPB를 이용하면 다량의 항응고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 혈관폐색 등 합병증 발생 위험성이 높아진다. 반면 에크모를 사용하면 항응고제 사용량을 최소화할 수 있어 부작용 위험이 크게 줄어드는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골수(조혈모세포)이식 환자가 폐 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역시 이 덕분이다.

백 교수팀은 백혈병 등의 중증 혈액질환으로 조혈모세포이식술을 받은 후 거부반응으로 폐 손상이 온 환자들을 폐 이식수술로 다시 살리는 길을 개척했다.

백 교수팀은 또한 폐 이식과 관상동맥우회로형성술 동시 시술, 폐·신장 동시 이식수술과 같은 고난이도 수술도 무리 없이 시술하게 됐다.

폐이식 환자 길잡이 역할 자임

폐 이식은 고난이도의 수술이기도 하지만 자주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어서 정작 이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폐 이식인 중에도 수술 전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을 정도.

세브란스병원 폐 이식 클리닉은 이렇게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폐 이식 수술 정보를 좀더 많이, 자주 제공하고 편히 숨 쉴 수 있게 돕는 길잡이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폐는 다른 장기와 달리 외부 공기에 노출돼 있어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균 등에 감염되기 쉬운 장기다. 따라서 수술 후 면역억제제를 사용해야 하는 폐 이식은 감염 위험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폐 이식 성공률이 다른 장기이식에 비해 낮은 것으로 알려진 이유다.

백 교수는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 수술인 만큼 풍부한 경험과 물 샐 틈 없는 팀워크가 요구되는 것이 폐 이식 수술”이라면서 “중증 폐질환으로 숨 쉬기가 불편한 환자들이 폐 이식을 통해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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