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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벌어 먹던 동료 떠나는데, 남는 게…” 시집 ‘미안하다’

입력 2017-07-03 19:05:01
최근 시산문집 ‘미안하다’를 낸 노동자 시인 표성배가 3일 경남 창원 공장 공터에 서 있다. 작가 제공




이상한 일이다. 일자리를 빼앗는 쪽이 미안해야하는데 일자리를 뺏기는 쪽이 미안해한다. 노동자 시인 표성배(51)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자신의 마음을 시산문집 ‘미안하다’(갈무리·표지)에 담았다. 그는 3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공장이 폐쇄된다는 소식을 듣자 아들 딸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이게 모든 아버지의 마음일까. 밥벌이가 수월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만으로도 불안하고 초조하고 미안해진다. 시인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와 같은 처지에 있거나 그럴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있는 모든 노동자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미안하다’는 그가 일하는 경남 창원 한 공장에 일부 공장폐쇄가 공고된 2015년 11월 26일부터 연말까지 약 한 달 동안 쓴 시와 산문이다.

경남 의령 산골에서 태어난 시인은 초등학교 졸업 후 동네 형을 따라 마산의 한 공장에 취직했다. 공장에서 일한 시간은 1979년부터 40년 가까이 된다. 그는 “열다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마산과 창원 공단에서 일했다”며 “노동자들은 대부분 공장에서만 일했기 때문에 이곳을 떠나면 살길이 막막하지예”라고 했다.

그는 간간히 경상도에서 쓰는 동사 어미 ‘∼예’를 썼다. 시인의 말은 차분했지만 그의 글은 고용불안과 노동구조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표현한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노동자의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불안’이라고 하고 ‘층층이 나뉜 고용형태는 (인도) 카스트제도보다 더 경직된 현대판 카스트제도’라고 한다.

회사가 공장폐쇄를 선언하고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동안 그는 동료들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하나둘 희망 퇴직서에 서명을 했다. 그는 다행히 버텼다. 시인은 “같이 밥을 벌어먹고 살던 동료들이 떠나는데, 나는 남게 된 게 미안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전체의 40%에 해당하는 동료 70여명이 공장을 떠났다.

시인은 이 장면을 시 ‘미안하다’에 ‘공장 야외 작업장을 터벅터벅 걷는/ 이 아침이 미안하구나/ 오롯이 숨 쉴 수 있다는 게/ 더 미안하구나’라고 썼다. 책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밥벌이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그는 89년 방통대 국문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를 쓰는 이유를 물었다.

“자본주의와 시는 참 어울리지 않는데….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빨라지기를 요구하는데 시는 반대로 느림을 필요로 한다.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써야 한다. 시가 (내게) 이 사회를 견디게 해주는 힘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시를 쓰며 이 사회의 속도를,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을 견디는 노동자이자 아버지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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