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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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정승훈] 65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입력 2017-07-05 18:05:01


중환자실의 조명은 밝지 않았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조용했다. ‘삐익∼삑’ 하는 기계음과 일부 의료진이 속삭이는 소리만 들렸다. 피곤에 찌든 듯 보이는 의사가 서류 다발을 건넸다.

몇 년 전이었다. 어머니가 심장판막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아버지, 동생과 함께 3명이 중환자실에 들어갔던 참이었다. 고참 레지던트로 보이는 의사는 “심장판막수술은 요즘 그리 힘든 수술은 아니지만 어쨌든 일정 시간 심장을 멈춰놓은 상태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술 동의서 작성하셔야 합니다. 가족 두 분의 사인이 필요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동생이 멀찍이 물러나려 했다. 두 사람의 사인이 필요하다면 아버지와 형이 하면 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자 의사는 한마디를 더 했다. “65세 이상이신 분은 동의서의 법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습니다”라는 정도의 얘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일흔이 넘은 나이였다.

수술과 처치에 대한 동의서 외에도 수술 과정에 의과대학생들이 참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서류 등 종류가 많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따지거나 꼬치꼬치 캐묻긴 힘들었다. 허겁지겁 사인을 하면서도 뒤에 서 계신 아버지의 표정이 퍽 궁금했다. 두 사람의 사인이 필요한데 자식 둘이 곁에 있어서 든든하다 느끼셨을지 아니면 아내의 수술 동의서에 사인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셨을지…. 여쭤보지 못했으니 그날 아버지의 기분을 헤아리기 어렵다. 다만 그날이 아버지에게 그리 든든한 날은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살아가면서 65세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절실하게 느낀 날이었다.

요즘 TV 등 미디어에서는 나이가 든다는 사실 자체를 꺼리는 건 물론 심지어 죄악시하는 우스갯소리를 접할 수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제 나이보다 늙게 보이는 ‘노안(老顔)’은 조롱의 대상이 된 지 오래고 주류와 다소 다른 생각을 얘기하면 ‘꼰대’로 취급받는다. ‘나이가 벼슬인 줄 아는’ 일부의 말과 행동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모습을 전체 노인의 행태로 일반화하는 건 문제다. 대다수 어르신들은 노인에 대한 사회의 배려를 고맙게, 그리고 자식 세대에 미안해하면서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노인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은 지극히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도시철도(지하철) 무임승차 논란도 그중 하나다. 도시철도를 운영 중인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정부에 손실 보전을 계속 요청하고 있는데 손실의 근거 중 하나가 노인의 무임승차다. 지자체와 관련 학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도시철도의 만 65세 이상 무임승차 노인은 4억1200만명으로 전체 승객 24억5400만명의 16.8%에 달했다. 지자체는 이로 인한 재정 손실이 총 5378억원으로 전체 도시철도의 운영적자 7652억원 중 70.3%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전동차 속 노인들을 지자체에 손실을 떠안기는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는 셈이다.

엄밀히 말해서 무임승차 손실은 실제 손실이 아니다. 단지 무임승차자에게 요금을 받았다면 5378억원 정도 더 벌 수 있었을 것이라는 기대 수익을 의미할 뿐이다. 지하철은 이용객이 없을 때에도 운행되는 방식이라 무임승객이 많다고 해서 손실이 늘지 않는다. 관리인력 등이 더 필요해 비용이 다소간 들어간다 해도 그게 수천억원은 아닐 터인데 무임승차 때문에 사회비용이 증가하고,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급속도로 인구 구성이 고령화되는 상황에서 무임승차 문제를 비롯해 노인 대상 정책의 변화를 고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일부 노인 단체들도 노인의 기준연령을 단계적으로 70세로 높이는 데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를 기대한다. 다만 그 방법은 보다 세련되길 바란다. 지하철을 타는 어르신들이 스스로에 대해 민망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승훈 사회2부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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