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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지친 삶에 활력주는 詩 처방전

입력 2017-07-07 05:05:04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엔 소설보단 시(詩)다. 시는 지루한 내 삶을 깨우고 지친 삶을 잠재운다. 시집전문서점 '위트앤시니컬' 대표이자 시인인 유희경과 시인 김선우에게 여름휴가를 위한 '시 처방전'을 요청했다. 유 대표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 지겹다"는 A씨 사례에, 김선우는 일에 지친 직장인 B씨에게 각각 아래 시집을 처방했다.

■오은 시인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만사가 무료해 지겨운 그래서 지친 A님께 제가 권하고 싶은 시집은 오은 시인의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문학동네)입니다. 이 시집은 우리 주변을 둘러싼 흔하디흔한 일상의 일들을 호기심 가득한 태도로 뒤집어놓습니다. 재치 만점인 말놀이를 통해서 말이죠. 덕분에 이 시집을 읽기 시작한 독자들은 당황하기 십상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금방 즐거워집니다. 말들이,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입속에서 마음속에서 톡톡 튀어 오르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니까요.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읽어보세요. 이 시집을 통해 시어의 무게 따윈 잊어버린 채 시가 지닌 깊이의 세계를 만끽해보세요. 이를 통해 A님의 여름에 청량감 넘치길, 지루하기만 한 일상에 멋진 균열이 생겨나길.

“한 줄기 빛은/ 한 줄기 빛/ 발아가 이루어지면/ 한 포기 난초와/ 한 떨기 장미로 피어난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엄습하는 것들을 사랑해// 때때로 우리가 직접 나서지 그것들을 잡기도 하지// …// 우리는 별처럼 빛나는 순간을 기다려/ 우리의 동공이, 우리의 동맥이 현장을 사로잡는 순간을 기다려”(오은 ‘아이디어’ 중)

■천양희 시인 '새벽에 생각하다'

삶의 무게로, 복잡한 일로 지친 B님에게 제가 권하고 싶은 시집은 천양희 시인의 '새벽에 생각하다'(문학과지성사)입니다. 막차 기다리듯 시 한편 기다리는 시력(詩歷) 52년차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포기하지 않는 한, 생은 끝내 아름다움에 접속한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인 시 쓰기를 통해 시인이 자신의 삶을 구원하듯이 일상의 속도를 잠시 멈추는 휴가지의 시간이 B님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바람결에 잎새들이 물결 일으킬 때/ 바닥이 안 보이는 곳에서 신비의 깊이를 느꼈을 때/ 혼자 식물처럼 잃어버린 것과 함께 있을 때/ 사는 것에 길들여지지 않을 때/ 욕심을 적게 해서 마음을 기를 때/ 슬픔을 침묵으로 표현할 때/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므로 자유로울 때/ 어려운 문제의 답이 눈에 들어올 때/ 무언가 잊음으로써 단념이 완성될 때/ 벽보다 문이 좋아질 때/ 평범한 일상 속에 진실이 있을 때/ 하늘이 멀리 있다고 잊지 않을 때/ 책을 펼쳐서 얼굴을 덮고 누울 때/ 나는 기쁘고// 막차 기다리듯 시 한 편 기다릴 때/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 쓰는 일일 때/ 나는 기쁘다."(천양희 '나는 기쁘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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