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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노트] 하늘 보기

입력 2017-07-07 17:40:01
‘북서쪽에서 본 데벤테르 풍경’ 살로몬 판 라스위달


얼마 전 방송국에 갔었는데, 엘리베이터 벽면에 ‘구름의 순우리말 이름’이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뭉게구름이나 먹구름처럼 익숙한 이름도 있었지만 햇무리구름, 두루마리구름처럼 입에 익지 않은 것도 있었다. 먼 하늘과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구름을 보며 “이건 새털구름 저건 비늘구름”하고 이름 붙여줬던 때가 마지막으로 언제였을까. 4년 전 여름에 런던의 햄스테드 히스 공원 풀밭에 누워 순간순간 모습을 바꾸는 구름에 별명을 붙여줬던 장면은 떠올랐는데, 정작 서울에서는 구름을 제대로 감상한 기억이 없었다. 책 쓴답시고 연구실 커튼을 내리고 컴퓨터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고, 진료실에서는 슬픈 표정 짓는 환자의 눈망울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살아왔기 때문일 거다. 짬이 나도 고개 들고 위를 보기 보다는 코앞의 스마트폰만 습관적으로 들여다봤으니 하늘의 인상이 뇌리에 남아 있을 리 없었다. 미세먼지 때문에 하늘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던 탓도 클 테고.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느냐’ 하는 것과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 하는 것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광활한 공간, 영원한 시간을 생각하면 자기도 모르게 눈동자가 위로 올라간다. 교회 건물에 들어서서 높은 천장을 보면 경외라는 감정이 불쑥 솟아오른다. 경외심은 우리 존재가 신이 만든 크나큰 세상의 아주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나의 시선이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론에까지 닿는 것이다.

마음의 관점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심리 상담을 받아도 습관처럼 굳어버린 사고방식은 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선을 바꾸는 건 쉽다. 매일 보는 것들을 조금만 바꿔도 마음 습관이 변한다. 하늘을 보고, 자연의 광활함을 체감할 수 있다면 나를 옭죄는 협소한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라는 존재를 인류라는 큰 그림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힘도 길러진다. 우주비행사가 우주에서 지구를 보며 감동을 느꼈을 때, 온 인류가 형제라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가끔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하늘과 구름을 올려봐야 한다. 우리를 지켜주는 신은 먼 하늘 어딘가에 있지, 땅 속에 있지 않다. 우리는 신을 향해 틈틈이 위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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