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한마당-지호일] 그날의 4인

입력 2017-07-09 17:40:01


그날 저녁 9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우병우 당시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실에 몇 분이나 남아 있어요?” “6, 7명 정도 됩니다.” “나갑시다. 금요일인데 맥주나 한잔합시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핵심 취재원의 갑작스러운 술자리 제안이었다. 서초동 한 호프집에 우 기획관과 노승권 중수1과장, 윤석열 중수2과장, 윤대진 검사 등 4명과 기자들이 모였다. 중수부 주력 4인방이 수사 브리핑 장소 밖에서 기자들 앞에 모두 등장한 건 없던 일이었다.

“가볍게 술 한잔하자는 거지 다른 건 없소”라는 우 기획관 말로 시작됐지만 이내 검사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중수부를 없앤다는 게 말이 되는 얘기냐”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수사를 못한다.”

2011년 6월 3일의 기억이다. 중수부가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를 한창 진행할 때였다. 당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중수부 폐지 법제화’에 합의하자 소속 검사들은 울분을 토했다. 사흘 뒤 현충일에 김준규 검찰총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상륙작전을 시도하는데 갑자기 해병대 사령부를 해체하면 어떡하나”며 중수부 사수에 나섰다. 특수검사들의 거센 반발이 총장까지 움직인 거였다.

4명이 한 테이블에 모인 걸 본 건 그날이 마지막이다. 그해 8월 검찰 인사로 흩어져 지난 정부에서는 확연히 다른 길을 갔다.

‘노무현 수사 검사’라는 원죄를 안고 공직을 떠났던 우 기획관은 민정비서관, 민정수석으로 권력의 중심에 섰다. 윤 과장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하다 상부와의 충돌 끝에 귀양살이에 들어갔다. 윤 검사는 채동욱 총장 때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에 올랐지만 2014년 이후 수도권 임지로 올라오지 못했다. 노 과장은 비교적 순탄하게 검사장까지 승진했다.

국정농단의 지각변동은 4명을 다시, 이전과는 다른 성격으로 이어지게 했다. 우 기획관은 특검 수사팀장으로 복귀한 윤 과장과 검찰 특별수사본부 실무책임을 맡은 노 과장의 수사를 받았다. 윤 검사가 세월호 수사팀장을 하면서 옛 상관 우 기획관에게 압력성 전화를 받은 사실도 조사됐다.

정권이 바뀌고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된 윤 과장은 ‘환상의 콤비’라 불렸던 윤 검사를 1차장검사로 불렀다. 노 과장은 대구지검장으로 내려갔고, 우 기획관은 피고인이 돼 재판받고 있다. 지금 4명이 선 자리를 보면 그날의 풍경은 묘한 이질감을 준다. 그때만은 넷이 잔을 부딪치며 함께 분노했었다.

글=지호일 차장, 삽화=이은지 기자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