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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서승원] 한·일 정상회담과 위안부 문제

입력 2017-07-09 17:35:01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독일 함부르크에서 1년여 만에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40분이 채 안 되는, 통역을 감안하면 20분이란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안건들이 논의됐다. 정상 간 셔틀외교 복원에 합의하고 북한 핵·미사일 공조를 확인했으며 한반도 평화통일 여건 조성을 위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 강조와 그에 대한 아베 총리의 이해 표명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최대 현안인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양측이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 머물렀다. 아베 총리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구축해가는 데 있어서 (12·28 일본군위안부 합의 이행은) 빠질 수 없는 기반”이라고 말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더 가깝지 못하게 가로막는 무엇이 있다. 이 문제가 양국의 다른 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고 전해진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 지적대로 전체적으로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적절히 관리하는 것이 공통의 이익”이라고 한 발언이다. 문재인정부가 내거는 이른바 ‘투 트랙’ 전략에 아베 총리가 동의한 것으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투 트랙 전략이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이슈와 그 밖의 안보, 경제, 문화교류 이슈 등을 분리해서 별개로 접근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전략의 핵심은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간 불협화음이 양국관계 전반, 그리고 한·미·일 3국의 대북 공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문재인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다소 불협화음이 발생하더라도 대일 공세에 나설 것이며, 더불어 12·28 합의로 일본에 넘겨준 과거사 관련 외교적 주도권 되찾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그리고 취임 이후에도 일관된 입장과 의지를 보여 왔다.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는 “일본 정부가 그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받아들여 공식 사과를 해야 한다”고 했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도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포함하여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앞으로 12·28 합의 검증이 예고돼 있다. 검증 대상은 두 갈래다. 하나는 절차 문제로 당시 청와대가 시간이 필요하다는 외교부 요청에도 불구하고 전격적으로 합의를 지시한 이유, 다른 하나는 피해자 할머니들과 충분한 소통이 이루어졌는지 여부다. 초가을쯤 그 결과가 나올 것 같다. 그 이후 기존 합의를 유지할 지, 재협상을 요청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 합의를 부분적으로 개선할 것인지가 정해질 것이다.

다만 검증 기준과 대일 방침은 철저하게 ‘인권’에 근거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민족주의 관점에서 다루게 되면 한·일 관계로 특수화되어 버리고, 또한 양국 강경 민족주의 세력 사이의 적대적 제휴관계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 인권의 정의는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UNOHCHR)이나 그 산하의 고문방지위원회(UNCAT)가 제시한 것을 원용하면 될 것이다. 전시 성노예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 노력(역사교과서에 대한 정부의 개입 중지, 전쟁범죄를 국민에게 알리는 노력) 등을 말한다.

대통령 자신이 인권 변호사이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유엔에서 인권업무를 담당한 전문가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낸 정진성 교수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위원에 선임됐다. 닛폰카이기(日本會議) 등 역사수정주의 세력의 대리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베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껄끄러운 진용이다.

연합국의 구(舊) 적국이었으며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원하는 일본은 유엔에 민감하다. 또 아베 정권은 가치관 외교를 중시한다. 이는 동아시아에 인권 규범을 뿌리내리기 위한 중장기적 과정의 서전이다. 일본을 동반자로 끌어들이는 지혜, 그리고 우리 자신의 궤적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서승원 고려대 교수 글로벌일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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