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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노년의 적, ‘노화’ 아닌 ‘노쇠’… 병 없어도 ‘골골’

입력 2017-07-11 05:05:04
노쇠 진단을 위해 필요한 검사들. 다리 근육량 측정(위사진)과 구강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치아 파노라마 검사 장면. 치아 유실 등으로 영양상태가 안 좋으면 근육량이 줄어 노쇠를 초래하기 쉽다. 경희대병원 제공








김철수(가명·81)씨는 몇 년 전부터 입맛이 없어지고 온몸에 기력이 빠지는 걸 느꼈다. 바깥출입도 싫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고 싶었다. 1주일에 하루 이틀 걸을 뿐 대부분 앉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낸다. 지난 1년 새 몸무게는 10㎏이나 빠졌다.

특별히 앓고 있는 병이 있거나 수술한 적은 없다. 술은 마시지 않는다. 담배는 과거 30년간 피웠지만 지금은 끊은 상태다. 병원을 찾아 여러 검사를 받아봤다. 남성호르몬 부족 외에 모든 게 정상으로 나왔다. 다만 ‘노쇠’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비슷한 연령대인 조승수(82·서울 중랑구)씨는 김씨와는 판이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인근 복지관에서 1주일에 세 번씩 또래 노인들에게 컴퓨터를 무료로 가르친다. 26년간 직업군인과 14년간 자동차 영업 등 거친 현역생활을 하고 은퇴한 뒤에도 천주교 선교사와 복지관 봉사활동을 하며 활기찬 인생을 살고 있다.

1주일에 두세 차례 아쿠아로빅으로 체력을 다지고 하천변을 걷거나 자전거 타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삼시세끼 거르는 일이 없고 고기를 즐겨 먹는다. 조씨는 10일 “친구 7명 중 4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 남은 3명 중에서 제일 팔팔하다”고 했다.

조씨는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원장원 교수가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2015년 말부터 수행하고 있는 ‘한국 노인 노쇠 코호트 구축 연구’에 코호트(특성 공유 집단)로 참여하고 있다.

원 교수는 그에 대해 “건강 노화(Healthy Ageing)의 본보기”라고 했다. 검사 결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노쇠 판정 기준에 해당 사항이 하나도 없었다.

노쇠, 병 없어도 ‘골골’

노화와 노쇠는 다르다. 노화는 소화기나 신경계 등 신체 장기의 기능이 점차 떨어지는 현상이다. 나이 탓일 수도, 질병 때문일 수도 있다. 노쇠(frailty)는 이런 노화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빠르고 과도하게 진행될 때를 말한다. ‘허약’이라고도 불린다. 노화 자체뿐 아니라 충분치 못한 영양 섭취와 운동 부족, 각종 질병, 복용 중인 약물, 사회적 고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몸이 쇠약해지는 걸 뜻한다.

여든이 넘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과 옆에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힘든 60대의 차이는 노화가 아닌 노쇠에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노쇠를 건강 노화를 방해하는 ‘주적(主敵)’으로 규정하고 각국 정부의 예방 노력을 당부하고 있다. 원 교수는 “노쇠는 반드시 질병으로 발생하는 건 아니다. 질병이 많은 경우 노쇠할 가능성이 높지만 질병이 없더라도 노쇠 현상을 보이는 경우가 32%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또 “문제는 노쇠한 이들의 경우 감염이나 수술 등 스트레스가 있을 때 이겨낼 신체 능력이 부족해 섬망(안절부절 못하고 소리지름)이나 무기력 상태, 치매, 낙상, 보행장애가 잘 오며 쉽게 와상(臥床) 상태가 되어 수발이 필요하거나 사망할 위험이 증가한다는 점”이라면서 “노쇠 단계에서 적극 대처를 하면 장애나 요양시설 입소를 상당 부분 막거나 늦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5300여명 노인 대상 미국의 연구에서 노쇠한 노인은 건강 노인보다 골절 확률이 1.7배, 요양시설 입소 확률 5배, 3년 내 사망률이 6배에 달했다. 하지만 노쇠 상태로 이미 진행된 경우에도 적극적인 개입과 관리로 이전의 건강 상태로 회복이 가능하다. 노쇠 노인 966명을 5년 추적·관찰한 유럽의 연구에 따르면 31.9%는 영양 섭취나 운동 등을 통해 노쇠 전단계로, 7%는 건강한 상태로 회복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인 장기요양보험 판정에서 ‘등급외자’로 분류된 16만명(2014년 6월 기준)의 대다수가 노쇠 노인이며 수년 내 장기요양 등급 인정자로 진행될 위험이 매우 높다. 노쇠를 조기에 발견·대처하면 신체장애 유병률과 장기요양비 증가를 억제할 수 있고 노인 전체 사망의 3∼5%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횡단보도 신호 안에 못 건너면 의심

노쇠 유병률은 2007년 복지부가 실시한 전 국민 대상 노인 실태조사를 통해 추정한 게 전부다. 당시 한국 노인의 노쇠 비율은 8.3%였고, 노쇠 전단계는 49.3%나 됐다.

원 교수가 한국 노쇠 코호트 연구 1차 대상자 70∼84세 1469명을 분석한 결과 노쇠 유병률은 10.8%로 더 높았다. 노쇠 전단계는 48.5%로 비슷했다. 여성의 노쇠 유병률(14.2%)이 남성(7.1%)보다 더 높았다. 여성의 사회활동과 신체활동량이 남성에 비해 적고 여성이 남성보다 일반적으로 건강 상태가 안 좋고 질병을 더 많이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쇠는 국제 통용 측정 설문과 보행 속도, 악력(쥐는 힘), 근육량, 치아 검사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최근 6개월간 의도하지 않은 체중 감소(3㎏ 이상), 근력 감소, 보행 속도 감소, 과도한 피로감, 신체활동량 감소 등 5가지 항목 중 3가지 이상에 해당될 때 노쇠로 본다. 1∼2가지에 해당되면 노쇠 전단계다.

노쇠한 이들은 특히 보행 속도가 느려진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보행신호 안에 다 건너지 못하면 보행 속도가 느리다고 할 수 있다. 또 하지 근력 약화로 의자에서 일어서기를 5회 연속하기 힘들거나 10개의 계단을 도움 없이 쉬지 않고 올라가기 힘들면 의심할 수 있다.

원 교수는 “이런 증상이 1년 안에 갑자기 심해진 경우라면 단순 노화라기보다 노쇠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노쇠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가 근육량 감소인데, 특히 종아리근육량 감소 여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한 연구는 두 손의 엄지와 검지로 종아리의 가장 넓은 부위를 가볍게 원으로 감쌀 때 여유 공간이 남는다면 근감소증으로 볼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놨다.

단백질 섭취+운동, 근육량 늘려야

노쇠 예방과 대처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근육량 늘리기다. 근육을 합성하는 물질인 단백질 섭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 노인은 고기를 잘 안 먹는 경향이 있다. 채소 위주 식사가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이들어 치아가 망가지고 소화기능이 떨어져 육류를 꺼리기도 한다.

실제 국민건강영양조사(2014년)에 따르면 65∼74세의 경우 45.4%, 75세 이상은 65.9%가 단백질을 권장량보다 덜 먹었다. 현재 단백질 섭취 권장량은 몸무게 1㎏에 하루 0.9g이다. 남자는 하루 50g, 여자는 45g을 먹어줘야 한다. 하지만 고령층에서 근감소증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려면 권고량보다 많은 몸무게 ㎏당 1.2g(최대 1.5g)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

원 교수는 “노인들은 각종 만성질환으로 인해 단백질 요구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녀 공히 하루 60g 정도 섭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백질은 식사 때마다 골고루 나눠 섭취하는 것이 한 번에 폭식하는 것보다 근육 생성에 더 낫다. 아침 점심 저녁 20g씩 나눠 섭취하라고 원 교수는 권장했다.

육류 등 동물성 단백질이 콩 두부 등 식물성 단백질에 비해 필수아미노산 함량이 높아 근육 합성에 더 효과적이다. 한양대 식품영양학과 박용순 교수는 “한 번에 동물성 단백질 25∼30g은 섭취해야 근육 합성을 촉진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신장질환을 앓는 노인은 많은 단백질 섭취가 지병을 더 나빠지게 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비타민D는 골다공증과 근감소증 예방에 도움이 되며 골절 위험을 줄여주므로 노쇠 노인의 경우 하루 800IU의 비타민 보조제를 복용하는 것이 좋다.

영양 섭취와 함께 꾸준한 운동도 필수다. 노쇠 노인은 앉았다 일어서기 같은 하지 근력 운동과 걷기·자전거타기 등 유산소 운동, 한 발로 서기 등 균형운동을 복합적으로 하는 게 좋다. 근육은 단백질만 먹는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기력 없고 귀찮다고 운동을 소홀히 하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운동은 1주일에 3회가 적당하다. 주 2회 미만은 효과가 없을 수 있고 주 3회를 초과하면 운동이 과도하고 흥미를 잃게 만들 수 있다. 1회 운동 시 노쇠 노인에게 최적의 시간은 30∼45분이다. 노쇠 전단계라면 45∼60분이 알맞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생활은 우울증과 인지기능 및 보행능력 감퇴로 이어져 노쇠 발생을 부채질할 수 있다. 동아대 건강관리학과 박현태 교수는 “우울증 등 정신적 노쇠 예방을 위해서는 가사 장보기 쇼핑 등 저강도의 일상활동으로 하루 4000∼5000보씩 움직여주고 근감소증이나 보행속도 저하 등 신체적 노쇠를 막으려면 하루 7000∼8000보를 걷거나 중강도의 신체활동(평상시보다 빠르게 걷기, 계단 이용하기 등)을 15∼20분씩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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