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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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고승욱] 면세점

입력 2017-07-12 17:45:01


2차 세계대전 직후 아일랜드 새넌국제공항에서 일하던 브랜던 오리건은 공항에 서 있는 비행기에 탄 승객은 아일랜드에 도착했지만 입국하지 않은 애매한 상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새넌국제공항은 비행기 항로상 미국과 가장 가까운 유럽의 공항이다. 한번에 대서양을 건너지 못했던 당시 비행기들은 이곳에서 연료를 재충전했다. 승객들은 지루한 시간을 쇼핑으로 달랬다. 상품 리스트를 보고 물건을 구입하는 방식이었지만 만족도는 높았다. 오리건은 여기에 착안해 보세구역 안에 상점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법을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면세점이 생긴 것이다.

이후 전 세계 공항과 항구에 경쟁적으로 면세점이 생겼다. 그 중 찰스 피니가 세운 ‘듀티 프리 쇼퍼스 그룹(DFS Group)’이 가장 크게 성공했다. 평생 9조5000억원을 기부해 ‘자선사업의 대부’로 불리는 피니는 1960년 홍콩에 첫 면세점을 냈다. 당시 관광업계 큰손 일본인을 겨냥해 하와이 싱가포르 마카오로 매장을 넓혔다.

DFS는 공항 보세구역 면세점을 대도시 중심가로 끌고 나왔다. 탁월한 수완이었다. ‘부가가치세는 소비하는 나라에서 징수한다’는 소비자국 과세(국가 간 이중과세 금지)가 국제적 원칙으로 확립된 상황을 적절히 활용한 것이다. 도심면세점에서 구입하고 공항 보세구역에서 물건을 인도받는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면세점 업계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는 도심면세점 분야에서 세계 톱클래스다. 도심면세점이 한국에서 고안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79년 광화문 동화면세점, 80년 소공동 롯데면세점이 문을 열었으니 역사도 깊다. 그러나 지금 세계적으로 도심면세점은 사라지는 추세다. 유럽 각국은 관광객이 출국하기 60일 이내에 산 물건의 부가세를 환급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대기업보다는 작은 가게, 특색 있는 상점이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고승욱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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