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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는 ‘하루키 열풍’… 침체된 출판시장 살리기

입력 2017-07-13 05:05:03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Ivan GimNinez-Tusquets Editores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표지. 문학동네 제공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문고에 '기사단장 죽이기'가 진열돼 있다. 교보문고 제공


일본의 세계적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8)가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문학동네)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12일 “당초 10만부(1·2권 5만 세트)를 준비했다가 예약판매 기간에 주문이 쇄도해 3쇄에 30만부(15만 세트)를 준비한 상태”라며 “독자들의 호응이 크고 빨라서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부터 예약 판매된 ‘기사단장 죽이기’는 공식 발간일인 이날까지 교보문고 예스24 등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1·2위를 휩쓸었다. 지난 2월 일본에서 출간된 ‘기사단장 죽이기’는 130만부가 발행됐다. 국내에서는 지난 3월 소설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난징대학살’ 사건을 언급한 것이 크게 회자됐다.

하루키는 이와 관련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역사는 집합적인 기억이다. 과거라고 잊어버리고 바꿔치기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모든 사람이 책임감을 갖고 짊어지고 가야한다”고 말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 이후 4년 만에 나온 하루키의 신작 장편이다.

업계에서는 하루키의 신작이 ‘1Q84’(2009)의 국내 판매부수 200만부를 넘길지 주목하고 있다. 하루키는 같은 인터뷰에서 “단문이 소비되는 요즘,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도록 쓰는 것이 저에겐 중요한 일”이라며 “이야기는 즉각적 효력이 없지만 반드시 인간에게 힘을 준다고는 믿는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기사단장 죽이기’는 한번 잡으면 놓기 힘든 독특하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목 ‘기사단장 죽이기’는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에 등장하는 기사단장을 그린 소설 속 그림을 가리킨다. 주인공 ‘나’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이 그림의 유래와 의미를 추적한다.

“정말 미안한데, 더 이상 당신과 같이 살기는 힘들 것 같아.” 소설은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아내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36세 초상화가 ‘나’는 집을 나온다. 친구 마치히코의 제안으로 그의 아버지이자 유명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의 작업실에서 지내게 된다. 어느 날 천장 위에 숨겨져 있던 도모히코의 미발표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한다. 그림은 젊은 남자가 노인의 가슴 한복판에 검을 깊숙이 찌르는 장면을 담고 있었다.

‘나’는 그 노인이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돈 조반니의 손에 죽는 기사단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후 ‘나’의 주변에서 기이한 일들이 일어난다. 인근 저택의 백발 신사는 거액을 제시하며 초상화를 의뢰하고 ‘나’는 한밤중에 방울 소리를 듣는다. 방울은 집 뒤편 사당 돌무덤에서 울리고 있다. 그림을 그리다 ‘나’는 누군가의 동선을 감지하고 기묘한 목소리를 듣는다. 무덤 석실을 연 뒤 ‘나’는 소파 위에 도모히코의 그림 속에 있던 기사단장과 마주한다.

소설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상실의 계기로 등장한다. 오스트리아 빈 유학시절 도모히코는 나치저항 운동에 가담하고 이 과정에서 연인을 잃는다. 그의 동생은 강압적인 난징대학살에 가담한 뒤 그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도모히코는 그림에서 ‘기사단장’으로 상징되는 폭력과 부조리에 칼을 겨눔으로써 생의 의지를 드러낸다.

‘부친살해’(Patricide)라는 상징이 등장인물의 치유와 성장을 위한 주요 장치가 된다. ‘나’는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의 의미를 추적하면서 ‘나’만의 그림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를 그리게 된다. 기사단장은 ‘나’에게 말한다. “자, 단호히 나를 죽이는 거야. …아마다 도모히코가 원하는 일이야. …사악한 아버지를 죽이는 거야.”(2권, 352∼356쪽) ‘나’는 기사단장의 가슴에 칼을 내리꽂고 기사단장은 숨을 거둔다.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하루키가 소설에 자주 사용하는 요소가 거의 모두 망라된다. 소외된 인간, 심상을 드러내는 음악, 은밀한 공간, 주인공을 투영하는 ‘유사부친’, 초현실적 존재…. ‘나’의 모험담은 쉴 틈 없이 전개된다. 하루키 마니아라면 ‘하루키 월드’로 불릴만한 이번 소설이 매우 반가울 듯하다. 하지만 ‘이데아(idea·관념)’로 명명되는 기사단장 캐릭터가 작위적으로 느껴지거나 하루키의 다양한 장르혼합이 혼란스러운 이도 있을지 모른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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