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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원동력은 이타심”

입력 2017-07-14 05:05:02


잠에서 깼더니 동굴 안이다.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다. ‘여긴 어딘가. 나는 어쩌다 이곳에 왔는가.’ 어둠 속을 더듬는데 성냥갑이 손에 잡힌다. 성냥을 하나씩 그을 때마다 주변이 잠깐씩 환해지는데 그게 전부다. 동굴의 전체 모습을 가늠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것은 우주의 신비를 캐려는 인류의 모습을 비유한 장면이다. 미국의 여성 천문학자 베라 루빈(1928∼2016)은 좌절의 숙명을 걸머진 인간의 모습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성냥개비의 작은 불씨로는 주변만 잠시 밝아질 뿐 무한한 우주 전체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계속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진리에 가닿으려 애쓰는 족속이고 이런 태도는 지금의 문명을 만들어냈다. 배철현(55)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펴낸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인간의 특징을 분석한 신간으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거듭 묻고 답하는 신간이다.

첫머리에 등장하는 건 우주의 역사를 정리한 연도표.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한 137억년 전부터 지구상에 최초의 도시가 들어선 기원전 5000년까지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배 교수는 여기에 인간의 특정한 특징이 어떤 시기에 처음 나타났는지 표기했다. ‘불을 다스리는 인간’ ‘요리하는 인간’ ‘조각하는 인간’ ‘영적인 인간’ ‘종교적 인간’…. 배 교수가 연도표에 기재한 이들 문구만 일별해도 책에 담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이 어쩌다 불을 다스리고 요리를 하게 됐으며 예술 활동에 뛰어들었는지 전한다.

특히 배 교수는 인간의 이타심에 주목한다. “인간은 자신의 폭력성을 다스리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타심을 동시에 길러 나갔다”고 주장한다. “창조와 진화의 궁극적인 법칙은 사랑이다.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한 위대한 혁신의 원동력은 바로 이타심이었다. 6백만 년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이 영적인 유전자를 스스로 발견하고 발휘하는 여정이었다.”

종교학자이면서 고전문헌학자인 저자의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과학자나 고고학자가 밝혀낸 사실 위에 종교적 의미를 포개고 고문헌에 등장하는 내용을 곁들여 근사한 분석을 내놓는다. 인간은 이타적이면서 “더불어 사는 영적인 존재”라는 결론을 내놓기 위해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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