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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투병’ 소설가 박상륭씨 캐나다서 별세

입력 2017-07-13 21:10:01


죽음과 구원이라는 주제로 독보적 작품세계를 구축한 소설가 박상륭(사진)이 이달 초 별세했다. 향년 77세. 13일 문단에 따르면 박상륭은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지난 1일 캐나다에서 별세했다. 그의 부고는 그의 아내가 장례 후 한국의 몇몇 지인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전북 장수군 장수면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박상륭은 중학교 시절 이미 습작시 500여편을 남겼다. 1961년 중앙대 문예창작과 전신인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김동리(1913∼1995)에게 배웠다. 이때 평생의 문우 이문구(1941∼2003)를 만난다. 그의 첫 작품은 63년 사상계에 실린 ‘아겔다마(Akeldama·피밭)’다.

자신을 길러준 노파를 강간한 뒤 살해하는 유다를 내세워 구원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이문구는 과거 그가 “금호동 어느 언덕배기에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높은 축대 아랫집” 밑에 살았다고 쓴 적 있다. 박상륭은 그 아슬아슬한 집처럼 불안정한 인간의 운명과 구원에 대해 평생 썼다.

그는 69년 “이 땅에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며 간호사인 아내를 따라 캐나다로 이주했다. 그는 캐나다에서 종합병원 영안실 청소부로 일하며 소설을 썼다. 어느 날 박상륭은 한국으로 잠시 돌아와 이문구에게 보따리 하나를 풀어놓았다. 원고지 2700장의 대작. 바로 그의 대표작 ‘죽음의 한 연구’(문학과지성사)였다.

‘죽음의 한 연구’는 창녀의 아들로 태어난 서른세 살의 화자가 ‘유리’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40일 동안 구도하는 얘기다. 기독교적 사변을 바탕으로 하는 관념 소설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죽음의 한 연구’에 대해 “이광수의 ‘무정’ 이후 쓰인 가장 좋은 소설의 하나”라고 했다. 이 소설은 박신양 주연의 영화 ‘유리’(1996)로 제작되기도 했다.

박상륭은 94년 4부작으로 완간한 ‘칠조어론’을 내놓으며 관념소설의 최고봉에 우뚝 선다. 그가 2008년 발표한 장편 ‘잡설품’은 ‘죽음의 한 연구’의 속편 격이다. 시인 김정란은 그에 대해 “무덤에서 가장 많이 불려나올 소설가”라고 했다. 하지만 난해한 그의 작품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박상륭은 생전에 자기 소설이 난해하다는 평에 대해 “선의의 편에서는 찬사일 수도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작자와 독자 사이를 소원하게 해 작가로서는 매우 손해나는 찬사”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구도를 위한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끝은 죽음. 박상륭도 그들처럼 그 여행의 마지막에 도달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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