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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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세원] 펫로스, 그 깊은 고통의 터널

입력 2017-07-14 17:20:02


삶은 그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고 했던가. 더없이 소중한 반려견 예삐와 은별이를 의료사고로 갑자기 잃고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하얀 눈이 온 대지를 덮고 포근한 햇살이 내리쬐는 겨울날, 너무나 사랑스럽고 총명한 예삐와 은별이가 열흘 간격으로 아픔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로 떠났다. 반려견과 이별한 사람은 그 고통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 것이다. 흩날리는 벚꽃 향기마저 고통으로 느껴지던 시간을 지나 한여름으로 접어들었지만 무시로 찾아드는 죄책감과 억울함,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아이들과의 마지막. 마음으로 그리던 아름다운 이별의 꿈은 무참히 구겨지고 천사와 같은 아이들이 최악의 불행한 죽음을 맞게 될 줄이야. 병원의 부주의로 질병에 감염되어 중증의 호흡곤란을 겪고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시기에 주치의는 휴가라 얼굴도 볼 수 없었고, 응급한 상황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다 극한의 고통 속에 떠난 아이들의 모습은 평생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좁은 케이지 안에서 살고자 몸부림치던 처절한 모습. 한 번도 분리경험이 없던 아이들은 결국 함께했던 모든 것을 남겨두고 낯선 길을 떠났다.

멀쩡한 모습으로 진료 받으러 갔다가 나흘 후 내 품에 안긴 아이. 응석부리듯 뛰어오르며 덥석 안기던, 선한 눈동자는 한 곳만을 응시한 채 아무 반응이 없었고 푸른 잔디에서 뛰놀던 튼튼한 다리는 나무토막처럼 차갑게 굳어갔다. 아이들을 위한 나의 모든 정성이 어이없는 의료사고로 만신창이가 되다니. 온전히 나만 믿고 삶을 통째로 내맡겼는데 억울하게 생명을 잃은 아이들에게 난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감염된 사실을 알리지 않고 아이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의사를 어찌 용서할 수 있을까.

그토록 나를 좋아하던 아이들의 빈자리가 얼마나 가슴을 저미는지. 정신적으로 비교적 강한 편이라 여겼는데 아이들을 한꺼번에 잃고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소리 높여 한없이 울고 있는 나 아닌 것 같은 내가 있을 뿐. 진정한 애도는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고통스러운 기억만 떠오르다니. 내가 아이들 곁으로 가기 전에 깊은 그리움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펫로스 모임에 참여해보니 의료사고 등으로 아이를 잃고 인생에 실패감을 느꼈다는 사람이 많았다. 자녀를 잃은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을 만나 아픔을 공유하고 펫로스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잡으려 해도 유한한 것은 결국 모두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사랑의 진수를 지닌 아이들의 영혼조차 그렇게 사라질까. 반려견을 키워본 사람은 그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인지 알 것이다. 그 아름다운 영혼과의 교감이 얼마나 청량한 기쁨인지. 최상의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사랑의 모범답안 같은 순도 백퍼센트의 무한 사랑. 그 진수를 가르쳐주고 떠난 아이들은 내 삶에 더없이 고마운 고귀한 선물이었다. 죽음은 영원한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라 했던가. 아이들의 부재를 인정하지만 다시 만나리라는 소망을 가져본다. 고귀한 사랑으로 내 마음에 살아 느껴지는 존재. 지금처럼 영원히 빛날 아이들의 그 사랑이 남아 있기에.

김세원 방송작가 겸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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