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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금미의 시네마 패스워드] ‘덩케르크’… 세 겹 시간 속에 되살린 기적

입력 2017-07-19 09:36:41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덩케르크’의 한 장면.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실제 사건을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스펙터클로 재현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밑면이 살짝 오목하게 패인 오각형 모양의 프랑스. 그 오각형의 맨 위 꼭짓점에 위치한 최북단의 작은 항구도시, 덩케르크. 차가운 북해와 마주한 ‘땅끝마을’일 뿐, 이렇다 할 관광명소나 특이점도 없고 심지어 발음하기조차 까다로운 이 도시의 이름이 역사에서 유명해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초입에 벌어졌던 대규모 영국군 철수작전 때문이다.

유럽 대륙으로 파병되었던 33만명의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나치 독일군의 맹렬한 공격에 밀려 덩케르크라는 꼭짓점에서 포위되고 만다. 윈스턴 처칠은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불가능해 보일 만큼 대담한 작전 명령을 내린다. 일명 ‘다이나모 작전’이다. 1940년 5월 26일부터 약 일주일간 독일군의 폭격을 뚫고 도버 해협을 통해 대부분의 군인을 영국으로 귀환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훗날 ‘덩케르크의 기적’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20일 개봉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덩케르크’는 이러한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다크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을 연출한 감독의 초대형 전쟁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이미 기획단계에서부터 상당한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을 통해 천재적이라 할 만큼 놀랍고 치밀한 방식으로 시간의 유희를 보여주었던 놀란은 역사물이라는 장르를 처음 시도하면서 세 가지 층위의 시간을 절묘하게 병치시키며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해안에서의 일주일, 바다 위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 포위된 병사들은 배에 오르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침몰되는 배 안에서 생사가 엇갈리는 등 긴박한 나날을 겪는다. 이들의 구조를 돕기 위해 하루 거리의 바닷길을 서둘러 달려오는 어선 요트 등 수많은 작은 배들의 무리가 만들어내는 감동의 시간이 교차된다. 톰 하디가 연기하는 전투기 조종사 파리어의 한 시간은 고도의 서스펜스로 채워진다. 가진 연료는 한 시간의 비행에 쓰일 분량 뿐이고, 그나마 되돌아올 때를 감안해 꼼꼼히 계산해야 하는데, 하필 계기판까지 고장이 난다.

주연과 조연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영화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주인공이라면 아무래도 한스 짐머의 음악인 것 같다. ‘배트맨 3부작’ ‘인셉션’ ‘인터스텔라’에 이어 여섯 번째로 놀란의 영화에 음악의 옷을 입혔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심장을 겨냥해 날아와 꽂히는 그의 음악을 체험하려면 반드시 사운드 환경이 좋은 극장에서 관람해야만 한다.

놀란은 또한 컴퓨터 그래픽(CG) 등 디지털 이미지에 신경질적일 만큼 거부감을 가진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인터스텔라’의 광활한 옥수수밭은 CG로 만든 것이 아니라 촬영을 위해 직접 재배한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스펙터클에 사실성을 부여하는 일에 집착하는 만큼 이 영화에서도 군함과 작은 배들, 전투기 등을 실제로 동원해 촬영했다. 광활한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한 공중전 등의 화려한 스펙터클은 아이맥스를 위해 최적화된 것이니 시각적 쾌감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라도 이번엔 정말 극장으로 가야만 할 것 같다.

여금미 <영화칼럼니스트·영화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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