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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주목하는 건축가 노일훈 “작품에 전통 이미지·제작 기법 차용했죠”

입력 2017-07-19 19:20:01
건축가 겸 디자이너 노일훈 작가. 뒤쪽 두 작품을 포물선이 거울에 비친 것처럼 전시한 것은 포물선을 통해 중력실험을 했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에 대한 오마주다.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제공
 
‘라미 벤치 서울’. 탄소섬유를 일일이 꼬아 만든 이 작품에는 벌집, 인간의 뼈 조직 등 인체와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문양이 숨어 있다.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제공


세계적 영국 건축가인 노먼 포스터의 런던 건축 사무소에서 일했던 유학파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노일훈(29)씨가 국내 첫 개인전을 마련했다. 서울 강남구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 열리고 있는 ‘물질의 건축술’전이다. 그를 최근 전시장에서 만났다.

노 작가의 작품 세계는 스페인 근대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독일 현대 건축가 프라이 오토의 계보를 잇는 자연주의 건축 또는 유기적 디자인으로 요약된다. 그래서 인가. 브러시 모양의 의자 속엔 육각형 벌집무늬가 숨어 있고, 미끈한 테이블에 숭숭 뚫린 구멍에선 아메바 같은 해양생물이 떠오른다.

디자인 가구처럼 보이는 작품들엔 한국적 코드가 곳곳에 숨어 있다. 포물선처럼 늘어뜨려 샹들리에처럼 보이는 작품은 기와 처마의 유려한 곡선에서 따왔다. 크고 작은 포물선을 솟구치게 겹쳐 산 같은 형상의 작품은 조선시대 어좌 뒤에 놓았던 그림 ‘일월오봉도’가 연상된다.

“유럽에서 공부하며 한국적인 게 무엇인가 묻게 되더군요. 그런데 제 작품은 이미지뿐 아니라 제작 기법도 전통에서 많이 차용했습니다.”

상당수 작품들은 탄소섬유와 광섬유를 꼬아 만들었는데, 죽공예 짚공예 지승공예와 갓 제작 장인의 기술 등이 활용됐다. 중요무형문화재 및 전통공예 전수자를 일일이 찾아 묻고 배웠다.

이번 전시를 위해 40명이 고용돼 두 달 간 매일 8시간씩 탄소섬유와 광섬유 등 재료를 전통기법으로 꼬는 일을 했다. 그는 왜 수공을 고집하는 걸까. “산업혁명 때 기계에 저항하며 러다이트 운동까지 일어날 만큼 기계의 힘은 강력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살아남았지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사람이 우위를 점하는 부분이 여전히 있습니다. 저도 필요할 땐 3D프린팅 기술로 찍어내기도 하지만, 탄소섬유의 매듭이 꺾일 때의 각도 조절에는 사람이 더 효율적이거든요. 장인의 손맛이지요.”

그는 건축가지만 집을 설계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상상하는 미래지향적인 건축을 위해 다양한 건축 구조를 실험한다. 포물선 샹들리에도 실은 지구 중력에 대한 재료의 저항을 실험하는 것이다. 그런 실험의 결과가 의자 테이블 가림막처럼 생긴 건축적 조각으로 나타난다. 그는 “건축은 법규와 가격 등 고려사항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예술작업을 하지만 제 작품은 모두 건축적 실험이기 때문에 이 실험들이 건물로 만들어질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2013년 이탈리아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차세대 혁신 디자이너로 주목받았고, 그의 작품 ‘라미 벤치’는 프랑스 퐁피두센터에 소장됐다. 전시는 9월 17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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