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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태풍같은 가속의 시대 태풍의 눈으로 가라

입력 2017-07-21 05:05:03
6년 만에 신작 ‘늦어서 고마워(Thank You For Being Late)’를 출간한 토머스 프리드먼. 책 제목은 프리드먼이 약속한 사람이 늦게 나타났을 때 자주 사용하던 말이라고 한다. 상대방이 늦으면 그만큼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이 더 생겼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생각을 가다듬은 프리드먼처럼 독자들 역시 미래에 대해 숙고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게 이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다. 21세기북스 제공




카약을 타고 래프팅을 즐기는데 갑자기 유속이 빨라졌다. 이렇게 세찬 급류를 만난 건 처음이다. 닻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당신에게 있는 건 노밖에 없다. 당신은 노를 젓는 대신 노를 강물 깊숙이 담가 속도를 줄여보려 애쓰지만 속수무책이다.

이럴 때 카약을 제대로 조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의 당부는 이렇다. “급류에서 안정성을 높이려면 노를 물의 흐름만큼, 혹은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이 같은 조언은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64)이 ‘늦어서 고마워’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흐름에서 중심을 잡으려면 더 열심히 노를 저어야 한다. 프리드먼은 이것을 ‘역동적 안정성’이라고 명명한다.

역동적 안정성을 부연하려면 책에 등장한 이런 비유를 소개하는 게 좋을 듯하다. 태풍을 만났을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태풍의 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고요한 태풍의 눈은 ‘역동적’인 공간이지만 ‘안정성’도 느낄 수 있는 장소일 테니까.

“정치인들은 폭풍을 막는 장벽을 세우자고 제안한다. 이는 헛고생만 하는 일이다. …유일한 길은 태풍의 눈을 찾아내고 자신만의 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태풍의 눈은 태풍에서부터 에너지를 이끌어내고 그 안에서 안정적인 피난처를 만든다.”

어쩌면 진부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을 쓴 프리드먼이 누구던가. 퓰리처상을 세 차례나 받은 그는 전작인 ‘렉서스와 올리브나무’(1999) ‘세계는 평평하다’(2005) 등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면밀히 살피는 데 특출한 실력을 보여준 저술가다.

‘미국 쇠망론’(2011)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늦어서 고마워’도 마찬가지다. 발품을 팔아 길어 올린 ‘팩트’를 정교하게 분석해 그럴싸한 전망을 포개는 솜씨가 일품이다. 근사한 비유를 통해 흡입력을 배가시키는 문장력도 엔간한 수준을 넘어선다.

기자 출신인 프리드먼은 저널리스트들이 흔히 그렇듯 무언가를 명확하게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곤 하는데 신작 역시 마찬가지다. 21세기 들어 인류의 역사가 사상 최고의 변곡점을 맞았다는 내용을 늘어놓으면서 그 시작을 2007년으로 규정한다. 이 시기를 전후해 세상이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2007년은 아이폰이 출시됐고 페이스북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해다. IBM이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을 만든 것도, 구글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사들인 것도 이때다.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가 10억명을 돌파한 시점도 비슷한 시기였다. 프리드먼은 “와인 업계에서 품질이 뛰어난 포도가 수확되는 빈티지 연도가 있듯이 역사에서도 빈티지 연도가 있는데 2007년이 그런 해”라고 말한다.

핵심은 세계의 변화가 ‘빠르다’는 게 아니라 ‘빨라진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인류는 가속의 시대의 살고 있다. 1→2→4→8→16 순으로 커지는 등비수열(等比數列)의 숫자들처럼 기술 발달, 세계화, 기후 변화의 속도에 가속이 붙은 상태다. 이런 시대를 맞아 최악의 상황을 피하면서 최선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프리드먼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려면 좌와 우로 나뉜 정치권의 구도가 달라져야 한다거나 평생교육 시스템이 정비돼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일하던 옛 시절을 생각하며 슬퍼하지 마라. 그 시절은 지나갔고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전환기는 험난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전환기를 지나고 나면 저편에 더 멋지고 공정한 일터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들 중 가장 좋은 부분을 결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말이다.”

첫머리에는 프리드먼이 칼럼니스트로서 자신의 영업비기를 소개한 대목이 등장한다. “모든 칼럼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전깃불을 켜거나 그들의 마음속에 감정의 불을 지펴야 한다.” 올여름 이 책을 일독하는 독자들은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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