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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의 프랑스, 난민에겐 적대의 나라

입력 2017-08-03 05:05:04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지중해에서 스페인 비영리 구호단체로부터 구조되고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 출신인 이들은 24㎞ 가량 떨어진 리비아 사브라타 북부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유럽을 향해 출발했다. AP뉴시스


‘박애주의의 나라’ 프랑스가 난민들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로 국제적 비난에 휩싸였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난민 문제를 뒷전으로 밀어놓는 바람에 사태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면, 적대, 학대’. 프랑스가 난민들에게 보여 온 태도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일(현지시간) 이렇게 정리했다. 프랑스 최고행정법원은 최근 비위생적인 프랑스 북부 칼레 난민촌에 머물고 있는 난민 및 불법체류자들에게 정부가 최소한 식수와 화장실은 제공하라고 명령했다. 최고행정법원은 이같은 상황에 대해 “난민들의 생활여건은 공공당국의 행정 실패를 보여준다”면서 “기초적인 자유를 심각하게, 명백히 불법적으로 침해했다”고 밝혔다.

칼레 난민캠프는 지난해 10월 철거됐지만 난민 행렬을 막지는 못했다. 9000명 수준이던 난민 수가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을 뿐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지에서 온 난민들이 여전히 칼레의 거리를 떠돌고 있다. 이들이 국경을 넘어 영국으로 입국하려는 시도가 올 초 이후 수천 번에 달한다고 경찰은 밝혔다.

난민을 몰아내려는 ‘능동적 학대’도 계속되고 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는 경찰이 아무런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난민 어린이들에게 주기적으로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다고 전했다. 제라르 콜롱 프랑스 내무부 장관은 “후추 스프레이를 쓰지 않았다. 다만 최루가스를 사용했다”고 해명해 더욱 비난을 받았다.

비인권적 처사에 비난이 확산되자 콜롱 장관은 뒤늦게 “난민촌에 식수와 샤워시설, 화장실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난민들의 망명 요청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난민센터를 두 곳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나타샤 보샤르 칼레 시장과 손발이 맞지 않는 형국이다. 보샤르 시장은 “난민을 위한 편의시설을 만들어 칼레를 다시 ‘정글’로 만들지 않겠다”고 강하게 저항했다. 많은 칼레 시민들이 보샤르 시장의 생각에 동의할 수도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분석했다. 지난 5월 대선에서 중도를 표방한 마크롱 대통령은 압도적으로 승리했지만 칼레에서만큼은 극우주의 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가 우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주 중부 오를레앙에서 열린 행사에서 “난민들 모두에게 거처를 마련하는 것이 첫 번째 할 일이다. 연말까지 길이나 숲에서 난민들이 머물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이것은 존엄성의 문제, 인류애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경제적인 이유로 오는 난민들은 받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북아프리카 리비아에 난민심사시설을 짓겠다는 발표는 유럽연합(EU) 당국으로부터 “독단적인 행동에 당혹스럽다”는 비난을 샀다.

국내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지난달 21∼22일 조사 결과 국정운영 지지율은 42%에 불과했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인기 없었던 대통령으로 꼽힌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집권 2개월 당시(55%) 보다 낮은 수치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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