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볼트, 번개처럼 번쩍이며 떠나다

입력 2017-08-06 18:25:02
저스틴 개틀린(오른쪽)이 6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승에서 9초92로 우승한 뒤 3위를 차지한 ‘육상 황제’ 우사인 볼트에게 무릎을 꿇고 존경의 뜻을 표하고 있다. AP뉴시스




‘육상 황제’ 우사인 볼트(31·자메이카)의 마지막 100m 레이스는 위엄이 넘쳤다.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고, 라이벌 저스틴 개틀린(35·미국)에게 다가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개틀린은 볼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내미는 세리머니로 예우를 갖췄다. 관중은 금메달리스트 개틀린이 아니라 동메달리스트 볼트에게 환호를 보냈다. 2017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볼트는 팬들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 팬들은 “볼트”를 연호하며 화답했다.

6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승. 볼트는 9초92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개틀린과 9초94로 2위에 오른 신예 크리스천 콜먼(21·미국)에 이어 9초95로 3위를 차지했다. 개틀린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볼트는 육상에서 많은 것을 이뤘고, 다른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치켜세웠다. 볼트도 개틀린에게 “축하한다. 금메달을 목에 걸 자격이 충분하다”고 칭찬했다.

볼트는 2009년 베를린대회, 2013년 모스크바대회, 2015년 베이징대회에 이어 네 번째 세계선수권 100m 제패를 노렸으나 동메달에 그쳤다. 195㎝ 장신인 볼트는 느린 출발이 약점이었다. 전성기 시절엔 폭발적인 막판 스퍼트로 이를 만회, 육상 단거리를 제패했다. 이날은 출발반응 0.183으로 결승에 나선 8명 중 7위를 기록했고, 막판 스퍼트도 보여주지 못했다. 레이스를 마친 후 볼트는 “나의 스타트가 날 죽였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볼트가 주특기인 막판 스퍼트를 보이지 못한 것은 정상적인 훈련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4월 절친한 동료이자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은메달리스트 저메인 메이슨(영국)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장면을 목격했고, 이 충격으로 3주간 훈련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볼트는 세계 스포츠계에서 가장 빛나는 스타였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남자 100m와 200m를 석권하며 ‘세계 최고 스프린터’로 자리 잡았다. 또 세계선수권에서는 무려 11개의 금메달을 포함, 총 14개의 메달을 땄다. 자메이카 출신인 슬로베니아의 여자 스프린터인 멀린 오티(57)가 가지고 있는 최다 메달 기록(14개)과 타이를 이룬 것이다.

2009년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달성한 남자 100m(9초58), 200m(19초19) 세계기록은 ‘넘볼 수 없는 기록’이다.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볼트 천하’는 끝났지만 그가 남긴 기록과 트랙 위에 새긴 역사는 길이 남을 것으로 보인다.

볼트 때문에 ‘만년 2인자’ 꼬리표를 떼지 못하던 개틀린은 레이스를 마친 후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무려 12년 만의 금메달 획득에 감격한 듯 트랙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하지만 팬들은 금지약물 복용으로 선수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던 전력이 있던 개틀린을 향해 축하가 아니라 야유를 보냈다.

한편 볼트는 이번 대회 400m 계주로 선수 생활 고별전을 갖는다. 400m 계주에서 자메이카 대표팀이 메달을 획득할 경우 볼트는 세계선수권 최다 메달 신기록(15개)이라는 금자탑을 쌓게 된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