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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인기 없는 ‘국가 구강검진’ 왜?… ‘아아아~’는 이제 그만!

입력 2017-08-08 05:05:04

 
한 여성 환자가 지난 4일 서울대 치과병원에서 파노라마 영상 촬영을 하고 있다. 민태원 기자




40대 남성 A씨는 1년 전 충치 신경치료를 위해 치과를 찾았다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입안 조직을 파노라마 영상처럼 연속 촬영해 한장의 사진으로 보는 X선 검사를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큰 병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왼쪽 아래턱 치아 밑에서 10㎝가량의 물혹(치성각화낭종)을 찾아낸 것. 겉으로 볼이 약간 부어 보이는 정도이고 통증도 없어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A씨는 "2년마다 하는 직장 건강검진에서 구강검진을 꼬박꼬박 받았지만 별다른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물혹이 작을 땐 물을 빼는 간단한 수술로 제거 가능하지만 커지면 약해진 주변 뼈를 잘라내고 새로 뼈를 이식하거나 금속 지지대를 박아야 한다.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A씨 상태를 진단한 서울대 치과병원 영상치의학과 허민석 교수는 "치성각화낭종은 골치 아프고 재발도 잦다"면서 "치과의사 육안에 의존하는 현재의 국가 구강검진으로는 이처럼 숨어있는 치과질환을 찾아낼 수 없다. 파노라마 검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60대 여성 B씨도 2년 전 우연히 치과에서 촬영한 파노라마 영상을 통해 왼쪽 위턱뼈에 생긴 악성 종양, 즉 암(중심성 점액표피양암종)을 발견했다. 구강 뼈에 암이 생길 경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는 발견이 어렵다. B씨는 결국 치아 일부를 포함해 암이 퍼진 뼈 부위를 광범위하게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고 왼쪽 얼굴이 푹 꺼지는 장애를 안게 됐다. 그동안 국가 구강검진을 몇 차례 빠트렸다는 B씨는 “충치 몇 개 찾아낸 게 전부여서 굳이 받아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국가 구강검진 수검률 30% 안팎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무료 시행하는 일반 건강검진과 생애전환기(만 40세, 66세) 진단, 영유아 검진에는 구강검진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만 40세가 되는 해에 추가 실시되는 ‘치면 세균막검사’(치아 염색 통해 치태 확인)를 제외하고는 치아, 치주(잇몸)조직, 의치·보철(틀니 등), 구강위생 검사 등이 모두 치과의사의 맨눈 진료(視診·시진)로 이뤄진다.

육안으로는 진단이 불가능한 암이나 치아 사이 인접면 충치, 치아 뿌리 염증으로 인한 뼈 소실, 치아를 둘러싼 뼈 안에 생긴 초기 질환, 숨어 있는 치아(매복치) 등 심각한 문제를 찾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치과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한마디로 현재 구강검진 방식은 국민의 구강건강 위험 요인과 질병을 조기 발견하는 데 효용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국가 구강검진 수검률은 다른 의과 쪽 건강검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낮다. 7일 건보공단의 건강검진통계 연보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일반 건강검진의 구강검진 수검률은 31.1%로 의과 분야(76.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생애전환기 건강진단(구강 30.1%, 의과 77.1%), 영유아 건강검진(구강 37.1%, 의과 69.5%)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대한치과의사협회 이성근 치무이사는 “지금은 단순히 입 벌리라고 해 구강 위생상태를 살피고 충치나 부정교합이 있는지 파악하는 정도에 그친다. 다양한 치과 질환을 찾아내지 못하니 굳이 구강검진을 받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검진을 받으러 가도 치과의사가 아니라 치위생사나 간호조무사가 하는 경우가 많다. 치과 자체의 서비스 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점도 한몫한다”고 했다.

파노라마 영상 검사 도입해야

수검률을 높이려면 국가 구강검진 항목 개선과 함께 치과 자체의 서비스 질 향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위아래 치아 전체와 잇몸뼈, 턱뼈, 상악동(위턱 빈 공간)의 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파노라마 영상 촬영을 구강검진 항목에 새로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질병관리본부를 통해 이달 중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결과에 따라 구강검진 항목에 추가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파노라마 촬영은 대부분 치과 병의원에서 기본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찍는 데 20초 정도 걸리고 판독 결과 상담에 15∼20분 소요된다. 충치나 잇몸병 등 질환 진단·치료에 쓰일 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본인 부담금은 6000∼7000원 수준이다.

건강보험에서 의무 실시하는 국가 구강검진에는 파노라마 검진이 빠져 있다. 지금의 국가 건강검진체계 시행 시점(2009년)에 치과 파노라마 검사가 활성화돼 있지 않아 이에 대한 고려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치과의사협회는 2013년 질병관리본부에 구강검진 항목의 추가 필요성에 대한 근거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파노라마 검사 시행이 국민 건강증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과 비용 효과성 등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채택이 좌절됐다.

치협 측은 “치과 질환은 더 이상 구강 내에 한정된 질환이 아니라 심장병이나 당뇨병 폐렴 치매 등 다른 전신 질환과 연관성이 꾸준히 보고되고 있어 국민 건강증진에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파노라마 검진은 이제 구강 질환의 조기 발견과 치료에 유용성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맨눈 진료로 못 찾는 병 포착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지난해 다빈도 진료 10대 질환에 치은염 및 치주질환(잇몸병)은 전체 2위, 치아 우식증(충치)은 6위에 올랐다. 진료비도 각각 1위, 5위를 차지했다. 치과 질환 유병 인구와 의료비 부담이 상당히 크다는 걸 보여준다.

또 치과의료정책연구소 2010년 연구에 따르면 일반 구강검진 때보다 파노라마 검사의 경우 잇몸병 31.9%, 충치 23.1%를 더 찾아냈다. 또 매복치(33.6%), 상악동 이상(11.6%), 하악과두(아래턱) 이상(2.1%), 선천성 및 후천성 치아 이상(24.5%) 등도 추가 발견됐다. 이밖에 치아뿌리 염증질환, 남아있는 치아, 과잉치, 치아종(치아에 생기는 돌), 낭종(물혹), 각종 양성 및 악성 종양 등 맨눈으로는 불가능한 다양한 질환을 찾아낸다.

허 교수는 “턱뼈(악골)에 생기는 많은 질환은 대부분 증상이 없으며 환자 자신이 증상을 느낄 때면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며 “흔한 잇몸병도 중간 정도 이전까지는 본인도 모르고 현재의 구강검진에서 정상 판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가벼운 잇몸 염증(치은염)과 치석만 육안 판별이 가능하다.

허 교수는 “실제 한 지인은 치아가 아프다고 해서 파노라마를 찍었더니 잇몸병이 상당히 진행됐고 왜 그동안 치료받지 않았느냐고 묻자 해마다 구강검진을 받았는데, 늘 정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충치도 치아 사이 인접면 혹은 틀니 같은 보철물 주변에 생길 경우, 또 치아 뿌리까지 번져 신경치료가 필요한지 여부 등은 육안으로 평가할 수 없다. 턱뼈에 생긴 물혹이나 양성 종양도 마찬가지. 현 구강검진으로 확인이 어렵고 증상을 느끼고 병원에 오면 이미 많이 자랐기 때문에 턱뼈를 절단하고 뼈 이식 뒤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구강암도 그 빈도만 낮을 뿐 비슷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경희대 치과병원 영상치의학과 최용석 교수는 “40대부터 치아 부위에 빈번히 발생하는 각종 종양을 조기에 진단하고 노인의 경우 만성 잇몸병으로 인한 염증이 골수염으로 이어지는 걸 막으려면 정기 파노라마 검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유아와 어린이는 유치나 영구치가 나오는 시기에 파노라마 검진을 통해 매복치나 치아종을 일찍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숨어있는 치아는 올바른 치열 형성을 막는다.

최 교수는 “치아의 선천적 이상으로 과잉치(정상보다 치아가 많음) 혹은 결손치(있어야 할 치아가 없음) 등이 있는 경우 이를 미리 알면 영구치 교환 시기에 적절히 관리하면서 치아 상태를 좋게 개선할 수 있다”고 했다. 과잉치는 정상 영구치가 나오는 걸 막아 일찍 조치하지 않으면 부정교합을 초래할 수 있다. 또 유치에 충치가 생기면 인접면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데,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영구치 발육에 영향을 줘 기형치가 솟아 날 수도 있다.

허 교수는 “물혹이나 법랑모세포종 같은 양성 종양은 어린이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데, 현 구강검진으론 발견할 수 없고 파노라마 검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만 40세 검진 시 우선 시행 고려

치과계에선 비용 효과성이 문제라면 우선 만 40세 생애전환기에 하는 ‘치면 세균막검사’를 빼고 파노라마 검진을 넣는 걸 고려해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 교수는 “잇몸병 유병률이 35∼44세부터 급격히 증가하는 점을 감안해 만 40세에 시범사업으로 우선 시행한 뒤 효과성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노라마 검진에 의한 방사선 노출 우려에 대해선 흉부 X선 촬영에 따른 방사선 노출량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최 교수는 “건보공단의 TV·라디오 건강검진 활성화 홍보 캠페인에 구강검진 부분이 포함돼 있지 않아 국민 인식이 낮은 만큼 이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의 필수 건강검진 항목에 구강검진이 빠져 있는 점도 개선이 필요하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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