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누군가의 인생을 반복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여행은 이런 삶의 내력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정철훈(58)이 지난해 여름 만주(滿洲)로 갔던 것은 그런 의미였던 모양이다. 이 여정의 의미를 풀어쓴 시집 ‘만주만리’(실천문학사·표지)를 낸 그를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에서 만났다. ‘빛나는 단도’ 이후 3년만의 신작이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부고가 생활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생몰 연대의 괄호 안에 몰의 연도를 기입하는 게 일과처럼 돼버린 시간이었다.” 이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얼마간의 허탈함이 묻어났다. 세월호 참사 목격 직후 30년 가까이 재직했던 회사를 퇴직했고 그로부터 8개월 뒤 부친 정근(1930∼2015·동요작곡가)이 세상을 떠났다.
장례 후 선친보다 2년 먼저 별세한 둘째 큰아버지 정추(1923∼2013·북한 출신 망명 작곡가)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갔다. 지난해 7월엔 정추의 유품에서 발견한 첫째 큰아버지 정준채(1917∼1980·북한 영화감독)의 편지를 단서로 큰어머니 임옥순이 6·25전쟁 때 피난했던 만주 헤이타이로 날아갔다.
정철훈은 한 할머니를 만나 큰어머니가 살던 집터에 기적처럼 도착했다고 한다. 집터에는 푸른 옥수수가 자라고 있었다. ‘몸 전체가 푸른색을 띠고 있는 옥수수/ 나는 옥수수가 그토록 푸른 심연을 가진 식물인지/ 처음 알았다// 이엉집 방 한 칸에 세 들어 살던 모자는/ …/ 남녘 가족을 떠올리려 눈시울을 붉혔을 것이다.’(‘1952년 여름의 옥수수 밭’ 중)
그 집터에서 쓴 시다. 부고는 계속됐다. 올해 3월엔 알마티에서 둘째 큰어머니의 부고가 전해졌다. ‘친구 부인의 부고까지 왔으니 내 차례의 이별도 멀리 있지 않다’(‘이별의 마일리지’ 중)고 한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인생의 가을 ‘초로’의 문턱을 수긍하는 것 같았다. 3년간 부고를 쫓아 시간여행을 한 덕분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내 첫 기억은 어린 시절 얼룩무늬 사냥개가 얼굴을 핥던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첫 기억이라고 할 어떤 혀가 그때 시의 피를 묻혀 나를 핥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시조시인인 조부 정순극으로부터 시를 노래로 만들던 아버지와 그 형제로 이어지는 그의 가족들. 그 여행은 가족사 안에 흐르는 ‘시의 피’를 탐사하는 시간이었다.
정철훈은 “우리 가족의 역사도 크게 보면 우리 민족의 역사고 노래로 만들어지고 흘러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흘러가라 노래여, 흘러가라 시여!”(‘시인의 말’ 중)
글=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