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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 이승엽, KBO 최초 미국식 ‘은퇴투어’

입력 2017-08-07 18:15:01




‘산산조각이 난 꿈의 흔들의자(rocking chair of broken dreams)’.

미국프로야구(MLB) 통산 세이브 1위(652세이브)인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48)는 2013년 7월 3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원정경기에 앞서 부러진 방망이로 만들어진 독특한 의자를 은퇴 선물로 받고 환하게 웃었다.

리베라는 “이 색다른 의자는 최고다. 나에게 큰 웃음을 줬다”며 만족해했다. 미네소타 구단이 리베라의 주무기인 커터가 상대 타자들의 방망이를 자주 부러뜨린다는 점에 착안해 마련한 것이다.

리베라가 2013시즌을 끝으로 은퇴 의사를 밝히자 상대 구단들은 시즌 내내 은퇴투어를 열어줬다. 리베라가 찾은 구장에서 팬들은 기립박수를 보냈고 구단들은 작은 선물을 전달했다.

은퇴투어는 은퇴를 앞둔 스타가 전국 구장에서 야구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박수를 받으며 아름다운 퇴장을 기념하는 행사다.

MLB에서 은퇴 투어는 2012년 치퍼 존스(45·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시초가 됐다. 2014년을 끝으로 은퇴한 양키스의 캡틴 데릭 지터(43)는 은퇴투어 당시 휴스턴 애스트로스 선수들에게 자신의 등번호 2번이 새겨진 카우보이 부츠와 모자 등을 선물 받았다. 2016시즌엔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타자 데이비드 오티스(42)가 은퇴투어를 거절했지만 각 구단은 그를 위한 선물을 전달했다.

하지만 국내 프로야구에선 은퇴투어는 생소한 개념이다. ‘적토마’ 이병규(LG 트윈스), ‘불사조’ 박철순(OB 베어스) 등 프랜차이즈 스타를 위한 소속구단의 은퇴식만 있었다.

더욱이 구단과의 갈등을 거친 레전드는 은퇴식마저 없이 그라운드를 떠나기도 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무쇠팔 최동원(전 롯데 자이언츠)이었다. 롯데는 최동원이 고인이 된 2011년에야 뒤늦게 추모식을 열었고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처리했다. 레전드에 대한 예우에 인색한 풍토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척박했던 국내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0개 구단과 힘을 모아 전설 이승엽(사진)에 대한 프로야구 최초 은퇴투어를 연다고 7일 밝혔다. KBO는 각 구단과 협조, 이승엽의 활약을 담은 기념 영상 상영과 팬 사인회 등을 계획 중이다.

KBO 관계자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프로야구에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선수 중 한 명이고 선수나 팬에게 존경 받는 선수라 은퇴투어를 마련하게 됐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젊은 선수들에게 모범적인 선수 생활의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다”고 취지를 밝혔다.

‘라이온 킹’ 이승엽의 첫 은퇴투어 행사는 11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다. 한화 이글스 구단 관계자는 “영상 상영과 사인회는 물론 이승엽 선수가 헌신한 부분을 팬들과 함께 기념할 수 있는 이벤트를 준비 중”이라며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들어설 때 기립박수 등을 유도하거나 구장을 찾은 팬들이 이승엽 선수의 은퇴를 함께 축하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 9월 중순까지 삼성의 상대팀 구장에서 은퇴투어가 차례로 진행될 예정이다.

삼성 구단 관계자는 “이승엽이 ‘마지막으로 뛰는 구장에서 팬들에게 인사만이라도 할 수 있으면 족하다’고 말해 왔는데 다른 구단들의 도움으로 은퇴투어가 마련될 수 있었다”며 “이번 투어가 의미 있는 사례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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