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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전범기업 미쓰비시에 근로정신대 할머니 일부 승소

입력 2017-08-08 19:00:02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근로정신대 피해자 유가족 이경자씨(왼쪽 세 번째)와 ‘근로정신대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이국언 공동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8일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 피해를 당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이 하급심의 판결을 확정할 경우 근로정신대·위안부 해결책과 관련한 한국과 일본 정부의 재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광주지법 민사1단독 김현정 부장판사는 8일 원고인 김용옥(85) 할머니와 최정례(사망 당시 15세) 할머니의 조카며느리 이경자(74) 할머니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최근 개봉한 영화 ‘군함도’의 소재가 된 하시마섬에서 탄광을 운영했던 대표적 전범기업이다. 2015년 5월 제기된 이번 소송은 2년3개월 만에 1심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미쓰비시중공업이 김 할머니에게 1억2000만원을 배상하고, 이 할머니에게는 최정례 할머니에게 산정된 배상액 1억5000만원 중 상속지분 325만6684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날 판결은 문재인정부 출범 후 일본의 배상 책임을 물은 법원의 첫 선고로 오는 11일에도 4명의 피해자가 2014년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가 예정돼 있다.

이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김 할머니는 전남 여수의 한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44년 5월 일본 나고야의 미쓰비시중공업 공장으로 끌려갔다. 당시 호남과 충청 지역의 13∼15세 소녀 300여명이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김 할머니는 ‘돈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꽃다운 14살 나이에 현해탄을 건넜지만 광복 때까지 전투기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최정례 할머니는 전남 나주에서 동원됐다가 그해 12월 7일 발생한 도난카이 대지진 당시 다른 소녀 5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전국적으로 14건에 달한다. 광주·전남지역 할머니들이 제기한 3건의 소송 중 첫 번째 소송은 앞서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한편 일본 지자체가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로 끌려갔던 징용자들의 명부를 폐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미쓰비시중공업이 1948년 6월 나가사키 지방 법무국에 원폭 피폭자들로 보이는 한반도 출신자 3418명의 명부와 함께 미지급 임금을 공탁한 사실을 보도했다.

하지만 22년 후 관할 법무국은 법무성의 보관 지시를 어기고 배상의 근거가 되는 명부를 없앤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실을 밝혀낸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는 “피폭자의 권리를 일본이 빼앗은 것”이라고 비난하며 향후 관련 법적 투쟁을 예고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구성찬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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