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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힙합은 변해야 한다… 평등·인권·사랑을 향해”

입력 2017-08-09 21:05:01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음악평론가 김봉현. 그는 "책이라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며 "앞으로도 힙합을 다룬 책을 계속 낼 것"이라고 했다. 윌북 제공




힙합 마니아라면 음악평론가 김봉현(34)을 모를 리 없다. 그는 힙합에 대한 날선 평론으로 필명을 날렸고, ‘서울힙합영화제’를 비롯한 수많은 힙합 관련 행사를 기획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평론가의 으뜸가는 덕목 중 하나가 성실함이라면 그는 훌륭한 평론가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하다. 김봉현은 최근 9년간 힙합 관련 저서나 번역서를 10권이나 펴냈다.

김봉현이 지난달 31일 출간한 ‘한국힙합 에볼루션’(윌북·표지)은 그의 이름이 들어간 11번째 단행본이다. 이 책을 소개하려면 미국 힙합 칼럼니스트 시어 세라노가 쓴 ‘더 랩: 힙합의 시대’부터 언급해야 한다. 지난해 국내에 번역·출간된 이 책은 1979∼2014년 매해 가장 중요한 미국의 힙합 음악을 선정해 힙합의 역사를 살핀 내용이었다. ‘한국힙합 에볼루션’은 이 책의 얼개를 그대로 가져왔다. 김봉현은 1989∼2016년 해마다 가장 중요한 한국 힙합 음악을 각각 한 곡씩 선정했고, 이들 노래를 통해 우리나라 힙합의 역사를 일별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김봉현을 만났다. 그는 “이번에 출간한 책은 ‘더 랩: 힙합의 시대’의 한국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매년 대표곡으로 선정한 곡들은 한국 힙합의 역사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한 노래들”이라며 “책에 실린 음악을 듣는다면 우리나라 힙합 음악의 진화 과정을 살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힙합의 ‘시작’으로 간주한 곡은 홍서범의 ‘김삿갓’이다. 랩을 “리듬을 근간으로 하는 발화 양식”이라고 정의했을 때 김삿갓이야말로 이 같은 양식에 “절대적으로 부합”해서다. 김봉현은 90년대 대표곡으로 듀스 서태지와아이들 지누션의 노래 등을 차례로 언급한 뒤 한국 힙합의 주요 변곡점 중 하나로 99년을 꼽는다. 이 시기는 드렁큰타이거가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를 발표하면서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킨 해다.

“드렁큰타이거는 한국 힙합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어요.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이전에 나온 힙합 음악이 모두 ‘가짜’인 것처럼 여겨지게 만든 음악이었어요.”

김봉현의 단단한 필력이 돋보이는 신간이다. 시종일관 능청스러운 입담이 이어지지만 어느 것 하나 눙치고 넘어가지 않는다. 쉽고 간결한 언어로 왜 이 음악이 훌륭한지, 무슨 이유에서 이 노래가 한국 힙합 역사에서 중요한지 설명한다. 음악 평론도 재밌을 수 있다는 걸 이 책은 보여준다. 자간과 행간에 묻어나는 싱거운 농담은 가독성을 끌어올리는 요소다.

“책을 쓰면서 가장 염두에 둔 건 ‘균형’이었어요. 특정 노래를 다각도에서 균형감 있게 분석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힙합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노래는 지난해 넉살이 발표한 ‘작은 것들의 신’이다. 이 곡을 다룬 챕터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실려 있다. 한국 힙합의 변화를 주문하는 저자의 목소리다.

“힙합은 변해야 한다. 힙합이 그동안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와 약자를 공격하는 데 표현의 자유를 사용해온 경향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세상에는 힙합이라는 예술보다 더 크고 중요한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 힙합 역시 이 가치에 기여하는 쪽으로 진보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란 차별이나 억압, 혐오가 아니라 평등과 인권, 사랑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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