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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9배… 항생제도 ‘묻지마 사용’

입력 2017-08-18 18:45:01
920t. 지난 한 해 국내에서 식용동물용으로 판매된 항생제의 총량이다. 2015년 덴마크에서는 109t의 항생제가 동물에 사용됐다. 돼지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국내에서는 1036만 마리를 키우는데 496t을, 덴마크에서는 1285만 마리에 81t을 썼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잠잠해질 기미를 안 보이고 있다. 축산농가에 닥친 대규모 파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닭은 AI, 소와 돼지는 구제역과 콜레라 때문에 철마다 수난을 겪는다. 대규모 살처분과 보상, 대책이 이어지지만 이런 파동은 되풀이된다.

임정묵 서울대 동물생명공학부 교수는 18일 “얼마 전 AI도 그렇고 이번 살충제도 마찬가지”라며 “공장식 축산을 둘러싼 다양한 요인이 고쳐지지 않으면 살충제든 항생제든 계속 써야 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또 문제가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항생제 남용 비판도 다시 제기됐다. 항생제를 과하게 쓰면 균이 이에 대한 내성을 발달시킨다. 이렇게 내성이 강해진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면 약물치료가 불가능하다. 2014년 영국 정부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항생제 내성 때문에 한 해 전 세계 70만명이 사망하고 이 숫자는 2050년에 1000만명으로 늘어난다. 이에 따른 비용 발생은 2014년부터 누적 100조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대처에 나섰지만 현실을 바꾸기에는 부족하다. 정부는 축산농가의 임의적인 항생제 사용을 줄이기 위해 2013년부터 항생제 성분 중 20종은 수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쓸 수 있도록 했다. 올해 대상을 32종으로, 2020년까지 40종으로 늘릴 계획이다. 고영상 제주대 의대 교수는 “(항생제 사용은) 기본적으로 수의사 처방을 전제로 해야 한다”며 “지금은 처방 대상이 아닌 항생제는 임의로 구매해 쓸 수 있는데 가축을 빨리 키워야 하는 농장 입장에서 그 유혹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무항생제 인증제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이번에 살충제 성분이 과다 검출된 31곳이 친환경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농장이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가축에게 항생제를 투여해도 해당 약품 휴약기간의 2배가 지나면 무항생제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실질적으로 무항생제라고 볼 수 없을뿐더러 이 마크가 있으면 안전할 거라는 착각을 준다는 문제까지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아예 약품을 쓰지 않겠다고 나선 곳도 있다. 경기 안성에 위치한 조아라한약닭농장에서는 항생제나 살충제를 전혀 쓰지 않는다. 낮에는 닭들을 풀어놓고 밤에만 계사(鷄舍) 안에 가둔다. 면적 396㎡인 계사에 닭 2000∼3000마리가 들어간다. 한 마리당 0.132∼0.198㎡의 면적을 차지하는 셈으로 A4용지 2∼3장 크기다. 계사 안에 케이지(닭장)는 없다. 바닥에는 흙과 왕겨(쌀 껍데기)가 깔려 있다. 이따금 이 위에서 날갯짓을 하며 자연스레 흙목욕을 한다.

농장을 운영하는 조성현(29)씨는 “AI 파동도 이곳은 피해갔다”며 “조금 더 비싸게 팔더라도 닭이 건강하게 자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정묵 교수는 “싼 값에 대량생산하려고 하니 이렇게 된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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