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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 관광객 밀집지구서 500m ‘광란의 질주’

입력 2017-08-18 18:40:01


스페인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에서 17일 오후 5시20분쯤(현지시간) 발생한 차량 테러로 다친 행인이 길바닥에 누워 응급치료를 받고 있다. 세계적인 관광지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으로 24개국 국민이 숨지거나 다쳤다. 범행에 사용된 흰색 밴 차량이 관광객으로 가장 붐비는 시간대에 인도를 덮치면서 거리가 일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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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을 맞아 관광객들로 붐비던 스페인 제2도시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는 17일(현지시간) 일순간에 아비규환으로 바뀌었다.

오후 5시20분쯤 흰색 2t 밴 차량이 람블라스 거리와 카탈루냐 광장을 잇는 지점에서 인도로 올라선 뒤 갑자기 행인들을 향해 돌진했다. 1.2㎞ 되는 람블라스 거리는 길 양편뿐 아니라 차도 사이에도 인도를 조성해 놨으며 시장과 식당가가 몰려 있어 늘 혼잡한 곳이다. 차량은 시속 100㎞로 약 500m를 달려 신문 가판대와 충돌한 뒤에야 멈춰 섰다.

목격자들은 현지 언론에 “차량이 광장 쪽에서 빠른 속도로 인도에 진입한 뒤 (더 많은 사람을 치기 위해) 지그재그로 운전하며 행인들을 들이받았다. 차에 들이받힌 수십명이 바닥에 쓰러졌고, 수백명이 비명을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행인이 차에 ‘꽝’ 받힌 소리를 총성으로 오인했을 정도로 차량은 전속력으로 질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로는 순식간에 쓰러진 행인과 시신으로 가득 채워졌고, 유모차들이 나뒹구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곳에서 숨진 13명 중에는 3세 아이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차량을 운전한 용의자는 현장을 빠져나와 도주했다. 경찰은 이 용의자와 함께 테러를 공모한 다른 용의자 4명을 체포한 뒤 그중 1명인 드리스 오우카비르의 신원을 언론에 공개했다. 1989년 모로코 태생으로 알려진 오우카비르는 차량 테러에 쓰인 밴을 렌트했다. 하지만 오우카비르는 “신분증을 도난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그의 10대 남동생 무사 오우카비르가 형의 신분증을 훔쳐 테러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바르셀로나 테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100㎞ 정도 떨어진 캄브릴스에서도 차량 돌진 테러가 또다시 발생하면서 스페인은 공포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이 그동안 서유럽의 프랑스 벨기에 영국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테러로부터 안전한 나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2004년 3월 마드리드 기차역에서 일어난 동시다발 폭탄 테러 이후 대형 테러 공격에 노출된 적이 거의 없다. 이후 스페인 정부가 대대적으로 지하디스트 소탕작전을 벌이는가 하면 시리아에서 진행된 서방의 대(對)이슬람국가(IS) 격퇴 공습전에 불참하는 등 테러 세력의 타깃으로부터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테러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차량으로 사상자를 냈다는 점에서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 수법의 로테크(Low-tech) 테러로 볼 수 있다. 올해 영국 런던과 스웨덴 스톡홀름, 지난해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니스에서 발생한 차량 또는 흉기 공격이 이 같은 유형의 테러다. 사람들에게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다’는 일상적 공포를 조성하기 때문에 총과 폭탄이 동원된 과거의 테러보다 훨씬 악랄하다. 차량 돌진 테러는 2014년 수니파 무장조직 IS가 영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부추긴 수법이다.

중동 본거지에서 수세에 몰린 IS는 해외에서 추종자들에게 테러를 일으키라고 선동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유럽의 ‘외로운 늑대’형 추종자들에게 흉기·차량 공격에 나서라고 반복적으로 선동했다. CNN방송은 이번 테러가 2014년 이후 서방에서 일어난 14번째 차량 돌진 테러라고 보도했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테러는 실제로 테러범이 행동에 나서기 전까지는 대테러 당국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예측이나 예방이 어렵다는 것이다. 유럽 각국은 향후 차량폭탄 테러가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글=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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