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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그날’ 없는 10~30대, 내가 왜?… 늘고 있는 조기 폐경

입력 2017-08-22 05:05:03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 김영상 교수가 지난 18일 한 여성과 폐경 상담을 하고 있다.




“도와주세요. 4개월 넘게 생리가 없어 산부인과에 갔더니 조기 폐경이라네요.”(37세 여성 A씨)

“20대도 폐경이 될 수 있나요? 7∼8개월 생리를 안 하는 건 기본이고 작년에는 생리 유도 주사 맞고 딱 한 번 했어요.”(26세 여성 B씨)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지식인카페 등에선 이처럼 조기 폐경에 대한 궁금증 해결이나 도움을 요청하는 여성들의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직 젊은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A씨는 “잠도 안 오고 막막하다. 남편 보기에 미안하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미혼의 B씨는 “조기 폐경이 치료되는지, 임신은 가능한지 궁금하다”며 간절하게 조언을 구했다. 폐경은 여성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생식에 관여하는 난소 기능이 떨어져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등)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고 생리가 끊어지는 현상이다. 우리나라 여성은 정상이라면 대개 50세 전후에 폐경을 겪는다. 조기 폐경은 이보다 10년 빨리, 40세 이전에 경험하는 경우다.

‘그날’ 끊긴 10∼30대 증가세

10∼30대 이른 시기에 폐경을 겪는 여성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2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조기 폐경(원발성 난소기능부전)으로 병원을 찾은 30대 여성은 2095명으로 2012년(1414명)보다 48.2% 증가했다. 20대 여성은 같은 기간 48.4%(475명→705명), 10대는 51.5%(103명→156명) 늘었다.

국내에선 정부나 관련 학회 차원의 조기 폐경 실태 조사나 원인 연구가 이뤄진 적이 없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전체 여성 중 1% 정도가 40세 이전에 폐경을 경험한다.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 산부인과 김영상 교수는 “연령별로 보면 30대는 100명 중 1명, 20대는 1000명 중 1명, 10대는 1만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정윤지 교수는 “최근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나이든 미혼 여성이 많아지면서 조기 폐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 포털사이트에 질문이 많이 올라오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다만 이들의 경우 조기 폐경보다는 단순한 생리불순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조기 폐경의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결혼 전이거나 아기를 갖지 못한 여성은 앞으로 임신할 수 없다는 상실감과 좌절감을 쉽게 떨치지 못한다. 정 교수는 “조기 폐경 여성 중에는 진단을 받고 나서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병원 치료를 거부하거나 민간요법에 매달리다 상태가 악화돼 다시 찾는 사례가 많다”면서 “조기 폐경 진단 시 대처 방법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기 폐경은 난임이나 불임으로 이어져 출산율 저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 차원의 유병 실태 조사나 인식개선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50% 이상, 뚜렷한 원인 몰라

조기 폐경은 40세 이전에 난소 기능이 상실돼 적어도 4개월 넘게 생리가 없는 무월경 상태이고 혈액 검사에서 한 달 간격으로 2번 측정한 난포자극호르몬(FSH) 수치가 폐경 수준(25IU/L 이상)으로 나올 때 진단된다.

밝혀진 원인으로는 염색체나 유전자 이상, 자가면역질환, 바이러스성 감염질환 등이 있다. 자궁내막증이나 난소암으로 인한 수술, 항암 치료 등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방사선 치료나 항암제 투여로 생식능력이 떨어진 젊은 여성 암환자들에게 조기 폐경이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백혈병 같은 혈액암의 경우 10∼20대 환자들의 비중이 높은데 이들 중 조혈모세포이식(골수 이식)으로 병은 완치됐으나 조기 폐경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문제는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특발성’인 경우가 50%를 넘는다는 점이다. 직장인 유모(29)씨는 10개월 전부터 생리가 없어 병원을 찾았다가 원인불명의 조기 폐경 진단을 받았다. 폐경을 부를 만한 암이나 질병력은 없었다. 염색체나 유전자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유씨는 “믿기지 않아 한동안 울기만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발성 조기 폐경이 흡연이나 음주, 스트레스, 과도한 다이어트, 환경호르몬 노출 증가와 무관치 않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흡연과 조기 폐경의 관련성은 연구가 꽤 많이 진행돼 있다. 미국 로스웰파크암연구소가 여성 8만8700여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현재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과거 담배를 피웠다 끊은 여성은 평생 담배를 피우지 않은 여성에 비해 조기 폐경 위험이 26% 높았다. 또 15세 이전에 흡연을 시작한 여성은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고 간접흡연에 노출된 일도 없는 여성에 비해 폐경을 평균 22개월 일찍 경험했다. 연구진은 담배연기 속 독성물질이 여성 생식기능과 호르몬 분비를 방해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하루 3잔 이상의 술을 마실 경우 조기 폐경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알코올은 난소가 성숙해지는 걸 방해하고 배란 시기를 교란한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대인관계, 수면부족으로 생기는 스트레스가 폐경 시기를 앞당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영상 교수는 “다이어트를 지나치게 하면 호르몬 분비가 안 돼 무월경이 온다. 이게 조기 폐경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추가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춘기가 2년 빨리 오는 성조숙증과 조기 폐경의 관련성도 제기된다. 여자 아이의 경우 만 8세가 안 돼 사춘기 증상이 나타나면 성조숙증에 해당된다. 최근 성조숙증을 경험하는 아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김성훈 교수는 “초경이 빨리 시작되면 조기 폐경이 될 확률이 높다”며 “더 확실한 건 장기 추적연구를 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조기 폐경일 때도 자연 폐경 때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안면홍조, 가슴 두근거림, 불면증, 신경과민, 정서불안, 우울증, 성욕감퇴 등 갱년기 증상이 일찍 나타난다”면서 “생리 주기 변화와 함께 이런 증상이 있을 땐 조기 폐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호르몬 보충 치료 “실보다 득 많아”

조기 폐경으로 에스트로겐 호르몬 수치가 낮아지면 이른 나이에 골다공증 골감소증 심장질환 당뇨병 등 ‘2차 질병’을 갖게 될 위험이 높아진다. 조기 폐경을 방치하지 말고 여성 호르몬 보충 치료를 해야 하는 이유다. 이 치료는 자연 폐경 나이인 50세 전후까지 받아야 한다. 최근 국제학술지 ‘당뇨병학’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당뇨 환자 348명 중 40세 이전에 조기 폐경이 된 여성은 55세 이후 폐경 여성보다 당뇨 발병 비율이 3.7배 높았다. 에스트로겐이 결핍되면 기억이나 인지 기능도 떨어진다.

정윤지 교수는 “일각에서 호르몬 보충 치료가 유방암 위험을 높인다고 우려하는데, 자연 폐경과 달리 조기 폐경의 경우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호르몬 보충 치료를 받지 않음으로써 초래될 2차 질병에 대한 부담이 더 크다”면서 “득실을 따져볼 때 호르몬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조기 폐경을 예방하는 확실한 방법은 없다. 난소 기능을 떨어뜨리는 생활습관 교정을 통해 악화를 막을 수 있다. 금연, 알코올 섭취량 조절, 규칙적인 운동, 적절한 체중 유지가 중요하다.

5%에서 임신 기대

조기 폐경 여성의 또 다른 관심사는 임신과 출산 여부다. 이들은 난소 기능이 많이 떨어지지만 약 10%에서 드물게 배란이 되기도 한다. 이때 자연 임신을 시도하거나 자연 배란을 이용한 시험관아기시술을 하면 임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임신 성공률은 5% 정도다.

김성훈 교수는 “진단을 받고 1년 이내에 임신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임신 가능성이 낮아지므로 임신을 원한다면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난소 기능이 아예 멈춰 이마저도 힘들다면 다른 사람의 난자를 공여 받아 시험관아기시술을 하는 방법이 있다. 정윤지 교수는 “여성 호르몬 치료를 지속했던 여성들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임신율이 더 높다는 연구보고가 있다”면서 “조기 폐경 환자에게 호르몬 치료가 꼭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영상 교수는 “항암·방사선 치료 등으로 난소 기능 저하가 예상되는 경우 손상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자신의 난자를 채취해 냉동 보관해 뒀다가 나중에 시험관아기시술에 활용하는 방법도 최근 도입돼 임신 성공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글=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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