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전체메뉴보기 검색

HOME  >  시사  >  종합

[단독] 획기적 ‘살충제 계란’ 방지대책 왜 사장됐나… 미스터리

입력 2017-08-21 05:05:04


‘살충제 계란’의 생산을 막는 것은 농림축산식품부 몫이지만 이를 유통과정에서 걸러내 소비자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는 ‘최후의 보루’는 식품의약품안전처다. 그러나 식약처는 1년 전 계란 안전을 위한 종합대책을 만들어놓기만 하고 이를 시행하지 않았다.

식약처가 지난해 6월 만든 계란안전관리대책(초안)은 생산에서 유통, 사후관리까지 ‘살충제 계란’ 사태를 막을 방지책이 총망라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식약처는 부적합 계란 유통방지, 위생관리 기준 강화, 위생 및 안전관리 기반조성, 영업자 책임 및 사후관리 강화라는 4가지 큰 과제 아래 19개 세부 시행과제와 추진 시기까지 못 박았다. 식약처는 대책 추진 배경에서 “국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계란을 공급하기 위해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책에는 계란 내 살충제 등 동물용 약품 잔류물질 검사를 연간 1000건 이상 실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올 들어 7월까지 식약처가 진행한 살충제 검사는 100건 안팎에 불과하다.

또 식약처는 대책 초안에서 동물용약품 사용요령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을 지난해 11월까지 완료할 계획을 세웠었다.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에서 살충제가 검출된 농가들은 대부분 “정부가 주는 약품을 뿌렸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사전교육만 제대로 돼 있었다면 사태 악화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 18일에야 산란계 위생안전 매뉴얼을 제작·배포하겠다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대책을 내놨다.

이번 사태에서 국민 불신을 부추긴 제각각 난각(계란 껍질) 코드도 1년 전에 이미 개선안이 제시됐었다. 식약처는 당시 잔류물질 기준 위반과 부적합 계란 추적·관리를 위해 난각 표시사항을 올 2월까지 사업자 명칭으로 통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난각 표시는 생산자, 사업자 등 4가지 방식으로 중구난방이다. 그 결과 이번 전수조사에서 난각 코드가 없는 살충제 계란이 나오기도 했다. 식약처는 지금까지 개별 농장을 대상으로 난각 코드 조사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가 ‘잘 만들어진’ 계란안전관리대책을 발표·시행하지 않은 이유는 미스터리다. 식약처는 대책을 마련한 뒤에 되레 대책과 거꾸로 움직였다. 같은 해 10월 이 대책 대체물로 발표한 ‘축산물 위생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보면 난각 표시 강화 등 알짜 내용이 모두 빠졌다. 오히려 축산물 관련 영업자의 위생교육 면제를 확대하는 등 안전성 확보와 상반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 관계자는 20일 “당시 계란위생 대책들이 박근혜정부의 규제완화 기조와 역행하는 측면이 있어 발표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0월 식약처와 농식품부 간 협의자료에 따르면 식약처는 식용란의 GP(계란유통)센터 의무화 방안에 대해 “규제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