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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혀있던 그는 새를 동경했고 모든 새를 연구했다

입력 2017-08-29 05:05:03
조류 도감 ‘한반도의 새’를 펴낸 송순창 대한조류학회 회장. 송 회장은 “앞으로 새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요긴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길사 제공




남자는 원래 문학을 사랑하는 문학도였다. 한국외대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을 졸업한 뒤엔 강사 신분으로 대학 강단에 섰다. 삶의 행로가 틀어진 건 3선 개헌 반대운동에 뛰어들면서였다. 그는 ‘요주의 인물’로 지목돼 1969년 연금(軟禁)을 당했다. 해금 통지서를 받은 건 1980년 4월 13일. 햇수로 12년을 세상과 유리돼 단절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연금의 삶을 살던 시기, 남자의 마음을 달래준 건 70년 어느 날 한 학부모가 선물한 금화조 한 쌍이었다. 그는 새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새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이름은 송순창(78). 그는 해금된 해에 대한조류학회를 창립해 지금까지 이 단체의 회장을 맡고 있다. 28일 경기도 포천에 살고 있는 송 회장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가 최근 펴낸 ‘한반도의 새’(한길사·표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책은 재야 학자인 송 회장이 한반도에 사는 야생 조류 540종의 생태 정보를 그러모아 완성한 조류 도감이다.

송 회장은 “유작이라는 생각으로 완성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새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는 신산했던 자신의 인생 스토리부터 풀어놨다. 연금을 당했던 젊은 시절 이야기였다.

“연금이라는 게 처음 1∼2년은 참을 만해요. 그런데 10년 넘게 연금을 당하니 힘들더군요. 하늘을 날아다니며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오가는 새를 동경할 수밖에 없었어요.”

‘한반도의 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요소는 그림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야생 조류 540종의 세세한 모습이 담긴 세밀화가 등장한다. 화가이자 송 회장의 동생인 송순광(74)씨의 작품이다. 송 회장은 “동생이 이들 그림을 그리는 데만 4∼5년 걸렸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조류 도감은 대부분 사진 도감이에요. 그런데 도감은 ‘그림 도(圖)’자가 들어있는 데서 알 수 있듯 그림으로 채운 책이거든요. 하지만 그림 도감은 돈이 많이 들어서 만들기 힘들죠. 하지만 저는 동생 덕분에 그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책은 송 회장이 2005년 펴낸 ‘한반도 조류 도감’을 크게 보완한 작품이다. 약 90종을 추가해 내용을 대폭 수정했고 제목도 바꿔달았다. 특히 북한 지역 조류들의 생태 정보를 포함시킨 점이 눈길을 끈다. 송 회장은 이들 정보를 2007년 12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입수했다고 한다. 책은 각 조류의 형태 생활권 번식 먹이 등을 하나씩 일별하는 구성을 띠고 있다.

그의 꿈은 남북한 조류들의 명칭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이다. 송 회장은 “새의 이름을 잘못 붙이면 새의 형태나 특성을 파악하는데 혼란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 작업이 성공하면 남북이 다시 하나가 되는 데 작은 물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유작이라는 생각으로 ‘한반도의 새’를 완성했지만 저술 작업은 계속할 겁니다. 내년 하반기에는 조류의 진화 과정을 다룬 책을 낼 겁니다. 진짜 저의 마지막 작품이 될 거 같네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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