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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스페셜] 몽골 사막서 자라는 희망 한 그루… 조림지 ‘고양의 숲’ 르포

입력 2017-08-30 05:05:05
몽골 중부 셍차강에 조성된 '고양의 숲' 조림지에서 지난 15일 현지 주민이 차차르간 나무에 물을 주고 있다. 주민들이 양동이로 일일이 들고 나른 생명수는 풀 한 포기 없던 황무지를 조금씩 초록의 바다로 바꾸고 있다.


‘고양의 숲’ 조림지에 식재된 차차르간 나무에 열매가 달려 있다. 차차르간은 비타민 성분이 많아 ‘비타민 나무’로도 불린다.


차차르간 열매로 만든 주스.


조림지 인근에 조성된 물웅덩이.




몽골 중부 돈드고비 지역 셍차강에서 만난 엘덴 벌렉(45)씨는 기후변화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환경 난민’이다. 셍차강 인근 초지에서 유목민으로 살던 벌렉씨는 이상한파로 기르던 가축을 대부분 잃고 대대로 이어왔던 유목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고향 인근에 한국의 도움으로 조성된 조림지에서 경비 및 관리원으로 일한다.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 도시 빈민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던 그에게 새로운 직업은 무엇보다 보람 있는 생업이 됐다. 벌렉씨의 일터 ‘고양의 숲’은 기후변화 대응 비영리 시민단체인 푸른아시아(이사장 손봉호)와 경기도 고양시가 2009년에 몽골 현지에 조성한 ‘녹색 실험’의 공간이다. 황사의 발원지인 고비사막과 가까운 이곳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의 최전선이다.

지난 15일 찾아간 현지 조림지에서는 식재한 묘목에 물을 주는 관수 작업이 한창이었다. 메마른 대지에 내리쬐는 땡볕 속에서도 현지 주민들은 부지런히 양동이로 물을 퍼 날랐다. 황무지에 열을 맞춰 낸 작은 구덩이에선 위성류, 비술나무, 노랑아카시, 포플러, 차차르간(일명 비타민나무), 우흐린누드(블랙커런트) 등의 나무들이 뿌리를 뻗어가고 있었다. 모두 척박한 토양에서도 생착률이 높은 수종들이다.

오전 7시부터 시작된 고된 작업이지만 작은 그늘을 드리울만치 자란 나무 곁에서 잠시 휴식을 갖는 이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셍차강 토박이인 주민 사보카 랍가(74)씨는 “과거엔 흙과 모래뿐이었던 곳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해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젊은이들도 힘에 부칠 만한 물주기 작업이지만 랍가씨는 “전혀 힘들지 않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6명의 손주를 둔 그는 “계속 관리해 나가면 손주들이 장성할 때쯤 완전한 숲이 돼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나무를 심고, 사람을 심는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8년 동안 가꿔온 푸른 나무들은 자연환경뿐 아니라 현지 주민들의 의식도 긍정적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조림지가 들어선 곳은 사막화 지표식물인 ‘할흐간’조차 자라지 않는 황무지였다. 2009년부터 나무를 심고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1년생 초본(草本·풀)과 다년생 초본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후 심은 관목과 교목 등이 초본과 어우러지면서 조림지의 모습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인근 유목민들이 기르는 가축들이 ‘고양의 숲’에 자란 풍성한 풀을 보고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오려고 해 울타리를 자주 보수할 정도다.

이동형(56) 푸른아시아 홍보국장은 “조림지 조성 초기엔 현지 주민들도 식물은 가축들의 먹이라는 인식이 워낙 강했다”면서 “주민들 스스로 가축들이 풀과 묘목을 먹어치우지 않도록 나서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튿날 현지 환경청 사무소에서 열린 주민 간담회는 터전을 지켜내려는 현지인들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주민들은 조림지가 조성되기 전에는 주변 마을마다 바람에 날려 온 모래가 담벼락 안팎과 길 위에 쌓였지만 조림지에 나무를 심은 이후 거주지로 유입되는 모래와 먼지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나무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확연해지면서 주민들은 본인들의 손으로 키워낸 나무들을 보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변화와 주민들의 호응에 주변 지자체에서도 조림사업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모래바람을 막는 방사림(防沙林)의 효과를 목격한 지자체들은 앞다퉈 조림지 조성을 요청했고, 일부 지자체는 자체 예산을 투입해 10ha 규모의 조림지를 조성해 6000여 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사막 마을의 ‘효자’로 거듭난 조림지는 공동체의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나무를 심고 키우는 소중한 부업이 생겨났고, 차차르간과 우흐린누드 등 유실수가 소출되면서 주민 공제회를 통해 공동체 수익금으로 적립되고 있다. 차차르간 열매는 현지에서 ㎏당 5000투그릭(약 2300원) 정도에 판매되는데 지난해부터 주민공제회에 적립된 판매 수익금이 260만 투그릭(약 120만원)에 이른다. 도시에서 일하는 몽골 공무원의 한 달 월급이 30만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조림지 주민들은 지역방송에 자막광고를 내는 등 판로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장을 함께 가꾸고 있는 한국인 조력자들도 마을의 변화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푸른아시아 현지 파견 단원으로 활동 중인 이일우(26)씨는 “몽골 주민들과 함께 일하다보니 그들의 삶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면서 “그들과 함께 빚어낸 환경과 인식의 긍정적 변화는 나무심기가 가져온 친환경 나비효과”라고 설명했다.

국제개발에 관심이 많았다는 또 다른 파견 단원 김찬미(22)씨도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결국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처음엔 도우러 왔다는 생각을 갖고 이곳에 왔지만 지금은 도리어 그들의 조림 작업을 통해 한국이 도움을 받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처럼 황무지를 녹색으로 물들이는 기적의 공간은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미래를 지켜주는 ‘녹색 상부상조’나 다름없었다. 메마른 땅에 자리 잡은 녹지대는 모래먼지를 걷어내며 양국을 이어주고 있었다.

■몽골은 지구 온난화 최대 희생양

몽골은 글로벌 기후변화의 대표적 희생양이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 기온이 평균 1도 상승하는 동안 몽골에선 70년 만에 2.45도 상승했다.

몽골의 5월 평균 기온이 예년 같으면 낮에는 영상 15도 내외를 기록했지만 올해 5월에는 36도까지 올라가기도 했고, 같은 달 고비사막에선 수은주가 66도를 찍은 날도 있었다. 몽골에선 이상기온 등으로 인한 사막화 등 각종 환경 재해가 최근 들어 부쩍 증가하고 있다.

300만명 남짓한 인구에 공장도 거의 없는 한반도 7배 크기 나라에서 사막화 등의 환경 재해가 발생한 원인으로는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 대만 등 주변국이 내뿜는 온실가스가 지목됐다. 주변국의 온난화 날갯짓이 몽골에서 환경 재해라는 태풍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여름 3주 동안 지속된 ‘장대폭염’은 몽골 사막화 확대로 인한 ‘열적 고기압’이 주된 원인으로 꼽혔다. 몽골에서 형성된 열적 고기압은 사막화에 따른 지면온도 상승과 맞물려 여름철에 북서풍을 따라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이동한다. 같은 시기 태평양에서 발생한 고기압이 장벽 역할을 하면서 한반도는 열적 고기압에 갇혀 기록적인 폭염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과거 한반도에서 발생한 폭염은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에 따른 해수 온도 상승이 주된 원인이었지만 최근 한반도에 나타난 폭염은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 재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글로벌 기후변화 방지 노력에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이유다.

셍차강(몽골)=글·사진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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