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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종의 환자 샤우팅] 건강사랑방으로 동네약국 부활했으면

입력 2017-09-03 20:40:01


환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먼저 환자에 대해 알아야 한다. ‘환자’(患者, Patient)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병 들거나 다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으로 설명돼 있다. 치료는 누가 하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캐치프레이즈가 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한국사회는 1999년 의사와 약사의 역할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의약분업’을 경험했다. 의약분업 이전 동네약국은 지약사회 주민의 건강을 관리하는 건강사랑방 역할을 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이 아닌 약국부터 찾아 갔다. 약사와 먼저 상담한 후 약을 구입해 치료할지 아니면 동네의원에서 의사에게 치료를 받을지 결정했다. 적어도 의약분업 이전에는 약사도 환자의 치료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다.

1999년 의약분업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프면 동네의원이나 병원을 먼저 찾는다. 약국은 의사가 처방한 전문의약품을 조제하거나 일반의약품을 판매한다. 2012년부터 약국 이외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도 해열진통제, 소화제, 감기약 등 일부 일반의약품을 판매하고 있고 정부는 이를 더 확대할 계획이다. 의약분업 후 약사는 복약지도를 고유한 업무로 할당받았다. 그러나 18년이 지난 지금 ‘식후 30분 하루 세 번 복용하세요’의 복약지도 수준으로는 주권의식이 높아진 환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또한 한국사회는 4차 산업혁명 영향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아이비엠의 인공지능 왓슨이 암 치료에 참여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출연과 사용증가는 약사 업무와 역할에도 영향얼 주고, 약사 복약지도에 큰 변화를 줄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환자 질환명, 약품명 등 최적화된 복약지도 콘텐츠를 제공하는 능력을 갖출 것이다. 어쩌면 인공지능 약사가 인간 약사를 능가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복약지도에 있어 약사는 ‘식후 30분 하루 세 번 복용하세요’ 정도의 기본 정보 제공만으로는 부족하다. 미래 약사는 개별 환자에게 특화된 맞춤식 복약지도를 해야 한다. 노력이 없다면 인공지능과 약 조제로봇이 융합된 4차 산업혁명의 미래사회에서 약사 직종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구글 선정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까지 소멸되는 직업 100개를 발표했는데 약사도 포함돼 있다.

미래사회 인공지능과 로봇을 능가하는 ‘환자에게 필요한 약사’는 어떤 약사일까? ‘개별 환자 대상으로 맞춤식 복약지도를 해 만성질환 환자들의 복약순응도(약을 정해진 시간에 정확한 용량·용법으로 꼬박꼬박 복용하는 비율)를 높이는 습관을 길러주고, 의약품 안전사용을 돕는 약사’여야 한다.

환자 입장에서 동네약국 약사에게 제안하고 강조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 한국 환자들은 본인을 포함해 가족 중 질병으로 치료받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당장 필요하지는 않지만 가족들이 평소 자주 복용하는 약도 있다. 이를 ‘가정상비약’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가정상비약 구비 시 약사가 참여하지 않는다. 약국이나 24시간 운영 편의점 등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의약품들을 구입하고, 관리도 거의 되지 않아 유통기간이 지난 경우도 있다. 이는 환자의 의약품 안전사용과 치료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연간 1회 또는 수시로 가정에 보관중인 가정상비약을 통째로 동네약국에 가져가 약사와 상담하고 적합한 가정상비약을 구비해야 한다. 또한 안전한 의약품 사용에 대한 복약지도를 받는 문화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의약분업 이전 지역사회에서 동네약국 약사들이 수행했던 건강사랑방 역할을 회복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안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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