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와 생활용품에서 잇따라 터져 나온 유해성분 물질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가습기 살균제 파동으로 홍역을 치른 우리로서는 걸핏하면 불거지는 독성화학물질의 불안감이 더욱 절실히 와 닿는다. 지난해에는 공기청정기와 차량용 에어컨 항균필터에서 나온 유독물질이 문제가 되더니 최근엔 살충제 달걀, DDT 오염 닭고기, 독성 생리대에 이어 유해물질 휴대전화 케이스, E형 간염 유발 소시지까지 속속 드러나 공포를 가중시키고 있다. 친환경 제품에서까지 유해성분이 검출되면서 케미포비아(독성화학물질공포)에 무방비로 포위된 것 아니냐는 극단의 우려감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과장된 위기감이 조장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유해 정도가 엄밀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 제기만으로 실제 이상의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은 실험과 결과로 입증된 사실만으로 따져야 됨에도 여론몰이로 몰아붙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31일 서강대 이덕환 교수(63·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를 연구실에서 만나 논란이 커지는 화학유해물질에 대해 물었다. 독성화학물질 전문가인 이 교수는 1985년부터 서강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잇따라 유해화학물질 검출 소식이 들린다. 우리가 얼마나 이런 물질의 위험에 놓여 있나. 실태가 어떤가.
“일상생활에서 어떤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말하는 것은 힘들다. 정부나 연구소 등 어떤 기관도 이런 종류의 계량화된 구체적인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 각자가 맞닥뜨리는 환경이 다른데 일괄적으로 어떠어떠한 유해성분 물질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실태가 명확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은 얼마나 위험하냐, 위험하지 않으냐, 이런 것이 아니다. 불신이 문제다. 특히 정부의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가 뭘 발표해도 국민들이 잘 믿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될 때마다 나는 늘 세 가지를 지적한다. 식품이나 생활용품의 안전 문제가 지나치게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는 것은 정치적 태도, 당국의 전문성 부족, 인식 결여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라면의 우지 파동을 잘 알지 않나. 또 골뱅이통조림의 포름알데히드 사건을 기억하나. 당시 국민의 관심이 최고조로 집중됐던 사안이다. 라면에 공업용 기름을 썼고 통조림에서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됐다고 검찰이 기소까지 했다. 결과는 어땠나. 최종적으로 모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식품 안전에 대해 전문성이 없는 검찰이 덜커덕 손을 대 문제를 걷잡을 수 없이 확대시켰다. 나는 이 과정에 정치적 판단이 어느 정도 개입돼 있었다고 본다.”
-당국의 전문성 및 인식 부족이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했는데.
“가습기 살균제가 처음 나왔을 때 당국은 제품 자체에 대해 잘 몰랐다. 법규나 기준이 미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엄청난 피해가 생기지 않았나. 생리대 문제를 보자. 이는 올 3월부터 본격적으로 논란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 환경부, 식약처 아무 곳도 제대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국민들이 보건위생과 관련된 논란을 제기하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여성환경연대라는 시민단체가 주도적으로 이슈화했고 이 과정에서 유독 성분이 포함됐다는 특정 제품명이 공개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 확대됐다. 처음부터 정부가 심각성을 깨닫고 제대로 움직였다면 이 정도로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론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언론은 과학적 이슈가 터지면 정통한 전문가들을 활용해 냉정하게 사안을 분석하고 판단해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국민과 정부 사이의 중재자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엉뚱한 데 매달리고 있다. 자극적인 팩트에 매몰돼 있다. 언론이 문제를 더 꼬이게 하고 본질과 상관없는 쪽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생리대는 정말 문제가 심각한가.
“강원대 모 교수의 실험 결과 생리대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검출됐다고 알려진 것이 문제를 증폭시킨 발단이었다. 나는 이 실험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분석 자료의 측정값에 오차범위가 있는데 이 범위가 너무 넓었다. 상식으로 수용할 수 없는 정도였다. 발견된 함유량이 나노로 표시됐는데 이는 10억분의 1의 단위다. 이게 과연 유의미한지도 따져봐야 된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대학 실험실의 실태를 잘 이해해야 한다. 대학 실험실은 어디까지나 연구를 위한 곳이다. 다시 말해 학술논문에 인용하기 위한 자료용 실험이 원래 목적이다. 실험 결과가 인체에 치명적으로 유해한지, 아니면 큰 의미가 없는지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전문 장비나 고급 인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지난주말 아내에게 생리대 몇 개 제품을 사오라고 해 일일이 뜯어봤다. 제품에 보면 식약처가 제품의 안전성을 보장한다는 레이블이 붙어 있다. 강원대 실험 결과에 따르면 식약처가 틀렸다는 말인데 과연 그럴지 궁금하다.”
-정부의 유해물질 업무가 기관별로 너무 분산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를 총괄하는 일종의 ‘119’나 독성화학물질센터 같은 게 있어야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 않나.
“그렇지 않다. 컨트롤타워가 없느니, 기능을 한 곳으로 모으자느니 말들이 있는데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각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는 일이다. 각 기관이 경직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각 기관이 독자적인 전문성을 더 갖추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민간이 의문을 제기하면 즉각 풀어낼 능력이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말로도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화학물질 공포가 과장됐다고 보나.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실제 위험한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유해물질이 검출됐다고 하면 일단 공포를 증폭시키는 기제가 사라져야 한다. 예컨대 포름알데히드는 천연식품의 유기물이 분해될 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임에도 무조건 인체에 심각한 해가 되는 것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 흔히 맹신하는 천연제품, 자연산, 전통식품 등도 모두 유익한 것은 아니다. 위험한지 여부는 과학적으로 제대로 검증한 결과를 바탕으로 얘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의 책무성이 요구된다.”
-경제력에 따라 안전에도 양극화 내지 격차가 생길 우려가 있다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나.
“돈이 없다고 안전망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회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위험이 실체 있는 위험이라고 확인된 경우에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단체와 언론이 위험성을 제기하고 증폭된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보완책이 마련될 수는 없다.”
-국민들이 유해물질의 피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일단 냉정해져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한쪽 주장에 무조건 휩쓸릴 것이 아니라 ‘왜’라고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나는 이런 태도를 ‘비판적 합리주의’라고 얘기한다. 국민들이 도서관이나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거나 시간이 되면 전문가를 통해 공부를 하려는 태도가 절실하다. 그곳에서 신뢰할 만한 정보를 획득해야 한다. 다만 포털의 검색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엉터리가 너무 많다. 생활상에서의 주의할 점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소비자가 직접 실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과학을 의혹의 수준으로 접근해서는 절대 안 된다.”
만난 사람=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서울대 화학과 학사 및 석사 △미 코넬대 박사 △서강대 화학과 교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대한화학회장 △기초과학단체협의회장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