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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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김서정] 갈치의 죽음

입력 2017-09-07 17:45:01


바다낚시를 나갔다. 봄에 나갔던 낚시에서는 손바닥만 한 돔 세 마리 겨우 잡은 채 멀미에 시달렸던 터라 이번에는 미리 멀미약을 먹었다. 열 명 남짓 낚시 체험 관광객을 실은 배가 뉘엿뉘엿 지는 해를 뒤로하고 십 분쯤 달려 바다 위에 자리를 잡았다. 드물게 날씨가 좋아 거뭇한 한라산의 거대한 실루엣이 선명한 선을 그리며 눈앞에 펼쳐졌다. 어두운 청보랏빛으로 짙어가는 하늘에 깔린 오묘한 주황 노을은 시나브로 움츠러들고 있었다. 명색은 한치 낚시였지만 세 시간 동안 한치는 아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대신 올라온 것들은 풍성한 갈치와 더 풍성한 고등어, 삼치 두어 마리였다.

초보 낚시객들이 플라스틱 물고기 모형 미끼를 달아 던진 낚싯대에 고기들은 연성 걸려들었다. 고등어는 어찌나 힘이 좋은지 씨름씨름 하며 끌어올리고 보면 시장에서는 구경도 못할 잔챙이기 일쑤였다. 선장이 빼내주기 기다리며 펄떡거리는 녀석을 낚싯대에 매단 채 들고 있다가 놓치기도 여러 번이었다. 고등어 덕분에 손이 즐거웠다면, 갈치는 황홀한 볼거리였다. 녀석들이 공중에서 퍼덕거리는 모습이라니. 갓 올라온 갈치가 그토록 빛나는 은색인 줄은 몰랐다. 최상급 은가루를 뿌린 듯 매혹적으로 반짝이는 얇고 기다란 몸은 빈사의 백조를 연기하는 발레리나의 팔 같았다. 섬세하면서도 리드미컬하게 떨리는 등지느러미는 마치 거미줄로 짠 레이스가 무희의 손끝에서 파도치는 것 같았다. 찬탄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말할 수 없이 복잡한 심경이었다. 저들은 죽음을 눈앞에 둔 채 단말마의 몸부림을 치는데 보는 인간은 그 아름다움에 감복한다.

고통을 감싸는 아름다움. 저게 죽음의 아이러니컬한 본질일까. 내가 죽을 때는 어떨까. 몸은 비록 힘없더라도 정신은 살아 왔던 온 생애를 끌어모아 저렇게 펄떡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저 위에서 누군가 내려다보며 아름답다 생각해줄까. 하늘을 올려다보니 황금빛 초승달이 너그럽게 웃는 눈처럼 보인다. 어쩐지 안심이 된다. 저 달이 갈치들에게도 위로가 되면 좋겠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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