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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상조 “재벌개혁, 과로사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

입력 2017-09-07 18:10:01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공정거래조정원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조사, 지주회사의 후진적 수익구조 문제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열흘 새 고민이 많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대기업집단의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첫 번째 제재 대상이었던 대한항공 사건이 서울고등법원 2심 재판에서 무죄로 판결났고,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1심 판결문에서 삼성 측의 공정위 고위 관계자 접촉이 아주 성공한 로비로 적시된 점을 언급했다. 그는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특유의 달변으로 재벌 개혁 등 민감한 문제를 이야기했다.

-대한항공 일감 몰아주기 무죄 판결을 어떻게 보나.

“서울고법의 공정거래법 23조의 2(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정)에 대한 법리해석이 과연 맞는가. 일감 몰아주기 거래 규모가 작아 경제력 집중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논리대로라면 현대차그룹의 글로비스나 SK㈜ 정도 되는 회사여야 규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23조 2는 사실상 의미 없게 된다. 일감 몰아주기 입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 공정위가 보다 적극적인 논리 구성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정위와 사회, 법원, 검찰 등의 대화·소통이 더 필요하다는 걸 다시 느꼈다.”

-순환출자 등 지배구조를 어떻게 개선할지가 재벌 개혁의 큰 숙제다.

“개별 그룹에 컨트롤타워는 있어야 한다. 하지만 컨트롤타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통제 시스템도 있어야 한다. 컨트롤타워에서 그룹의 중요 의사결정을 하고, 통제 시스템에서 최종 검토하는 두 단계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국내 재벌 모두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지 못하는 그룹은 컨트롤타워에 대한 자율통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내 재벌 중에 이런 기능을 하는 ‘거버넌스(통제)위원회’를 갖춘 회사가 5곳이다. 거버넌스위원회는 이사회의 하부 위원회로 이사회 결정을 통제 관리한다. 삼성물산, 현대차, 기아차, 모비스, SK홀딩스에 설치돼 있는데 다 유명무실하다.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이를 맡아야 하는데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가 이런 걸 이끌어주지 못한다. 재벌 개혁은 결국 거버넌스위원회의 독립적 운영, 컨트롤타워와의 조화다.”

-대기업도 문제지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아닌 5조원 미만 중견그룹의 일감 몰아주기가 더 심각하다. 대통령에게 칭찬받은 오뚜기도 최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지배구조 평가에서 최하점(D등급)을 받았다.

“이런 기업들은 부당지원 혐의로 조사 가능하다. 문제가 심각한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조사 확대를 위해 두 가지가 해결돼야 한다. 조사인력 강화와 공정위 내 경제분석 기능 강화다. 다만 자산 5조원 이상 그룹이면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지분율을 29.99%로 맞춘 기업들은 일정한 ‘데드라인’을 두고 있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변화가 없다면 부당지원 혐의로 조사할 수밖에 없다.”

-자사주 인적분할 등을 통해 지주회사 제도가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있다.

“지주회사의 자회사 최소지분율 요건을 현행 ‘20%(상장사), 40%(비상장사)’에서 ‘30%, 50%’로 올리자고 하는데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은 이런 규제가 없는데도 대부분 지분율 80% 이상이다. 지주회사의 수익구조 실태를 파악한 뒤 세금 혜택으로 지주회사 지분율 상향을 유도해야 한다. 자회사 지분율이 80%가 되면 법인세를 안 내게 하면 기업들이 알아서 변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재벌 개혁은 공정위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지주회사 전환 시 인적분할, 신주배정 등의 문제는 상법에서 접근하고 법인세 혜택은 법인세법에서 고려해야 한다. 범정부 차원의 협력과 고민이 필요하다.”

-금융사의 고객 자금을 이용한 총수 일가 지배력 유지·강화를 막기 위해 중간금융지주회사가 대안으로 제시됐다가 잠잠해졌다. 공정위의 입장은 뭔가.

“언젠가는 중간금융지주회사가 도입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해결 방법이 없다. 다만 국회와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첫 번째는 금융위원회의 금융그룹 통합감독 시스템이고, 두 번째는 삼성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다. 통합감독 시스템으로 그룹 내 금융계열사를 하나로 묶어 관리·규제하고, 그 다음에 금융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어떻게 강화할지를 공정위에서 고민해야 한다. 삼성은 금산분리 문제의 해법을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재벌 개혁이 너무 느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국민이 보기엔 재벌 개혁 속도가 너무 느린 것 아니냐 하지만 공정위로서는 과로사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이 다 필요하다. 이 둘을 어떻게 잘 조화시키느냐가 재벌 개혁의 성공을 결정하는 중요 포인트다. 재벌 개혁이 꼭 슬로건을 내고 법률안을 던지고 이렇게 요란법석을 떨어야만 성공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절한 방향의 자극과 그에 따른 반응이 쌓여야 진정한 개혁이 이뤄진다.”

-전속고발권(공정위에만 공정거래 사건의 고발 권한을 주는 것)은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검찰고발 등 무조건 형사화하는 것은 문제다. 법 집행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 내년 1월쯤 최종보고서를 낼 생각인데 행정, 민사, 형사 수단을 우리 현실에 맞게 체계화하고 조화시키는 게 목표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등 6개 법률에 규정돼 있다. 한꺼번에 다 풀 수 없고 (프랜차이즈 관련 불공정행위를 막기 위해) 가장 정형화돼 있는 가맹거래법부터 먼저 풀려고 한다. 경제 분석이 필요한 법률에 관한 전속고발권 폐지는 후순위다.”

-과거 공정위의 잘못을 국민에게 사과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과 CJ 사건 등 구체적 사건명을 언급할 생각인가.

“그동안 공정위가 일관성을 유지 못하고 공정성을 의심받는 일이 있었다. 다음 주에 공정위 신뢰제고 방안을 통해 발표하겠지만, 어떤 사건을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들어보면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실무자에게 인적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공정위 공무원들의 영혼을 지켜주지 못한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이성규 안규영 기자zhibago@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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