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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당신의 난소 나이는 몇 살?… 산부인과 찾는 미혼 여성들

입력 2017-09-12 05:05:03




#1 오는 11월 결혼을 앞둔 박모(33·여)씨는 얼마 전 난소의 건강상태를 확인해 주는 검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자신의 난소 나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소식에 검사를 받아본 결과 실제 나이보다 많은 30대 후반으로 나와 깜짝 놀랐다. 박씨는 원래 30대 후반에 임신을 할 계획이었지만 그때가 되면 임신 성공 확률이 더 낮아질 수 있기에 지금부터 임신 노력을 기울이기로 마음먹었다.

#2 주부 김모씨는 해외유학을 준비 중인 딸(21)의 결혼과 임신 시기가 너무 늦어지게 될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 사이에 자녀의 난소 기능 검사가 유행이라는 말에 솔깃해 딸과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다. 다행히 딸의 난소 상태는 건강한 20대와 같았다. 김씨는 “난소 기능은 개인과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이대로라면 30대 초반에 결혼과 출산을 계획해도 된다고 해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미혼 여성들, 난소 나이 검사 유행

난소는 난자를 만들고 에스트로겐 등 성호르몬을 분비하는 여성 생식기관이다. ‘알집’으로 불린다. 자궁 좌우에 1개씩 있다. 나이가 들수록 난소 기능이 떨어져 임신 가능성은 낮아진다. 여성의 가임력은 20대 중반에 가장 높고 35세 이후부터 급격히 저하된다. 40세 이상의 임신 가능성은 5% 정도다.

이런 사실은 각종 이유로 결혼과 임신을 미룬 여성들에게 걱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많은 직장 여성들이 일과 가정의 안정적인 양립을 꿈꾸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염려가 일선 산부인과의 새로운 트렌드로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난소 기능이 정상인지 미리 알아 두려는 젊은 미혼 여성들의 발걸음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박씨와 김씨의 딸이 받은 난소 기능 검사는 정확히 말하면 ‘항뮬러관호르몬(AMH)’검사다. AMH는 난자로 성숙돼 배출(배란)되는 난포를 구성하는 세포(과립막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 측정을 통해 난소가 품고 있는 난포와 원시난포(어린 난포)의 수를 파악해 난소 나이를 가늠하는 원리다. 연령 등에 따른 여성의 가임력을 정확히 반영해 난소 건강 평가 지표로 널리 쓰인다.

난소 나이 측정은 향후 임신과 출산 계획, 폐경 시기 예측, 건강관리, 커리어 등 인생 설계를 위해 모든 가임기 여성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대한가임력보존학회 김슬기(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11일 “기존엔 AMH 검사가 주로 난임 여성에서 시행됐지만 최근 늦은 결혼과 임신에 미리 대비하려는 미혼 여성들의 검사 비율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훈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도 “한 달에 40∼50명 정도 AMH검사를 받고 있다. 주로 20∼40대이며 상당수가 미혼 여성”이라고 말했다.

이들 중에는 생리가 불규칙하거나 조기 폐경이 의심되는 여성, 난소 혹 제거 수술로 난소 일부 혹은 전체를 들어낸 여성, 항암·방사선치료를 받았거나 받을 예정인 여성 등이 많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생리대 유해 성분에 대한 우려로 난소 상태를 체크하려는 여성들도 꽤 된다고 한다. 김명주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 교수는 “해외 유학을 가긴 전이나 유학 중에 잠깐 입국해 AMH 검사를 받는 여성들도 있다”고 전했다.

난자 보유량 검사, 가임력·폐경 예측

AMH 검사는 비교적 간단하다. 산부인과를 방문해 전문의 문진을 거친 후 채혈을 하면 된다. 병원 측은 진단 키트로 채혈한 혈액을 검사하는데 결과는 통상 30분∼3시간 내에 확인이 가능하다. 병원에 진단 장비가 없다면 외부 위탁 검사를 통해 2∼3일이면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 안 되는 비급여 검사로 100% 본인 부담이다. 비용은 5만∼8만원 정도다. AMH 검사는 2009년 처음 국내 도입됐다. 한 검사기관 자료에 따르면 2015년과 지난해 각각 약 2만건의 검사가 이뤄졌다.

AMH 검사는 생리 주기에 관계없이 언제 검사를 받아도 동일한 결과 값을 얻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난포자극호르몬(FSH)과 황체형성호르몬(LH) 측정 등 다른 난소 기능 검사는 생리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검사 시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초음파를 통해 난소의 미성숙난포(동난포) 수를 관찰하는 방법도 있으나 검사자 숙련도에 따라 결과 값에 오차가 생길 수 있다. 김슬기 교수는 “AMH 검사는 난임 여성뿐 아니라 만혼 혹은 미혼 여성들이 자신의 생식 능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폐경은 언제쯤 올지 등을 예측하는 지표가 된다”며 “조기 폐경으로 이어지는 다낭성난소증후군, 과립막세포 종양 등 다른 질병 판정에도 유용하다”고 말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은 난소 내 미성숙 난자가 배란되지 않고 퇴화해 생리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이다.

AMH 수치가 연령 평균보다 높으면 향후 난자로 배란될 난포의 수가 많음을 뜻한다. 수치가 낮으면 난포 수가 적거나 난소 노화가 많이 진행됐음을 의미한다. 또래보다 난자가 더 고갈돼 있어 향후 임신이 상대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AMH는 사춘기 이후 수치가 점차 높아지다 25세에 정점에 달하고 노화가 시작되는 35∼37세부터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폐경기(50세 전후)에 가까워지면 측정이 어려워진다. 같은 연령대 여성도 AMH 수치가 다르고 원시난포의 수는 100배까지 차이나곤 한다.

여성의 난소 기능을 떨어뜨리는 주 원인은 노화다. 하지만 20∼30대 젊은 여성들도 난소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흡연 음주 스트레스 환경호르몬 카페인 비만 등이 위험 요인으로 꼽히지만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환경호르몬 같은 내분비계 교란 물질은 여성 호르몬의 균형을 깨뜨려 배란장애와 생리불순을 일으킬 수 있다. 환경호르몬은 비닐 플라스틱 매니큐어 세제 등에도 들어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노출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상훈 교수는 “최근 문제된 생리대 유해성분에 대해서는 난소 기능 저하와 정확한 인과관계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여서 단정적으로 말하긴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AMH 검사의 가이드라인은 아직 없다. 전문가들은 만 25세 이상 여성이라면 통상 2∼3년 주기로 검사해 볼 것을 권고한다.

난임 대비 난자동결 보존 급증

AMH 검사로 자신의 난소 기능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한 경우, 향후 예상되는 난임에 대비해 미리 난자 동결 보존을 시도하기도 한다. 동결 보존은 난자나 정자, 배아(수정란)를 영하 196도 초저온에서 급속 냉동해 생명 활동을 일시 중단시켰다가 필요시 해동해 인공수정 시술에 쓰는 방법이다. 항암·방사선 치료, 조혈모세포(골수)이식 등 난소 기능 손상을 초래하는 치료를 앞둔 여성들이 치료 후 임신을 위해 주로 활용해 왔다.

최근에는 결혼을 늦추고 임신을 미룬 여성들이 젊고 건강한 상태에서 미리 난자 동결 보관을 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애플과 페이스북 등 글로벌기업은 2∼3년 전부터 커리어 유지를 위해 임신을 미루는 여직원에게 복지 차원에서 난자 동결 시술을 지원해 화제가 됐다.

미혼의 직장인 이모(36)씨는 얼마 전 생리불순으로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AMH 검사를 받았다. 난소 나이가 실제 연령보다 많은 40대로 나왔다. 그는 혹시 모를 난임 상황에 대비해 난자 동결 보존을 결정했다. 이씨는 “더 여유가 생긴 뒤에 결혼해 건강한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고령으로 임신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여성전문기관 차병원의 경우 난자 동결 보존 건수가 2012년 31건(난자 수 188개)에서 지난해 263건(1786개)으로 8.5배 증가했다. 30.5%가 34세 이하 여성이었다.

특히 지난해 난자 동결 보존 263건 가운데 85.2%(224건)가 미혼 여성이 비의료적 이유로 한 ‘소셜 뱅킹(social banking·사회적 난자 동결)’에 해당됐다. 그 밖의 보존 이유로는 항암치료 4.2%(11건), 기타질환 10.6%(28건)였다.

김명주 교수는 “AMH 검사로 자신의 난자 보유량이 얼마나 되는지 체크하고 그 결과에 따라 난자동결 보존 등 임신계획을 의료진과 상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혼 추세에 따라 AMH 검사 및 난자동결 보존 결정은 여성의 인생 설계에 필요한 검사의 하나로 더욱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글=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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