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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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윤고은] 문학상, L, 성공적

입력 2017-09-12 17:30:01


나는 이상○문학상 수상자다. 어디서 들어본 듯도 한 상이지만, 진짜 저 상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상문학상 말고 이상○문학상 말이다(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또 쑥스러우니 한 음절을 ○로 처리하겠다). 그건 내가 2010년에 첫 번째 소설집 ‘1인용 식탁’을 냈을 때 L이 준 상이다. 그 상에 대해 먼저 제안한 건 나였을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을 대상으로 상을 주면 어떻겠어, 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 책 안에 담긴 아홉 편의 소설이 모두 후보작인데, 그 중에 L이 가장 좋았다고 생각한 작품에 상을 주는 것이다. 나는 신이 나서 L에게 상장 제작 사이트를 알려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상금은 없어도 되는데 상장에 담길 문구는 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홉 편의 소설 중에서 어떤 작품이 상을 받게 되어도 결국 수상자는 내가 되는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과정은 긴장감이 넘쳤다. L은 시상식 때까지 수상작을 비밀에 부쳤다. 시상식은 봄날의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렸다. 나는 이벤트 대행을 하는 사람처럼 그 시상식을 준비했다. 경쾌한 줄무늬의 돗자리를 깔았고, 바구니도 준비했고, 그 바구니 안에 사진발이 잘 받는 간식들을 담았다. 풍선도 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에는 수상후보자가 되어 발표를 기다렸다. 아니다. 내가 사회까지 봤던 것 같다. 둘만의 시상식 사회 말이다. L이 심사평을 했고, 내가 수상소감을 말했고, 우리는 한 손으로는 상장을, 한 손으로는 악수를 하며 카메라를 봤다. 소설집 안의 ‘인베이더그래픽’과 ‘아이슬란드’가 공동수상을 한 건 확실히 반전이었다.

이 상은 우리만의 이벤트였는데 얼마 후에 C가 내 수상 사실을 알게 됐다. C는 아버지의 은퇴 기념 상장을 만들려고 상장 제작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웬 문학상 상장 예문이 있는 걸 봤고, 심지어 그 문학상의 심사위원과 수상자가 자신의 지인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 L이 연애편지보다 더 고심했을, 이상○문학상의 상장 내용이 거기에 예문으로 실려 있었던 것이다. C는 깔깔대면서 말했다. “야, 너 이러고 놀고 있구나!”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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