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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억척 흑인 소녀, 오바마를 만들다

입력 2017-09-14 22:45:01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아내 미셸 오바마(오른쪽)가 2008년 3월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유권자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국민일보DB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주유소에서 아내 힐러리의 전 남자친구를 마주친 뒤 “저 남자랑 결혼했으면 당신은 주유소에 있었겠지”라고 하자, 힐러리가 “아니, 저 남자가 미국 대통령이 됐을 거야”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버락 오바마(56) 전 대통령이라면 같은 상황에서 무엇이라고 했을까. “미셸, 당신이 저 남자와 결혼했으면 난 대통령이 못 됐을 거야.”

전직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쓴 미셸 오바마(53)의 전기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A Life)’는 미셸이 남편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목표를 맹렬하게 추구하는 공부벌레였다. 미셸은 학창 시절 자정까지 앉아 숙제하기 일쑤였고 종종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공부했다. 아이비리그인 프린스턴대에 지원할 때 교사는 “성적에 비해 눈이 너무 높구나”라고 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프린스턴대를 거쳐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미셸은 로펌의 막대한 연봉을 포기하고 지역 공동체를 위해 일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기회비용을 지불할 줄 알았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치밀함이 필요했다. “미셸은 목록 중독자처럼 자기 자신마저도 해야 할 일 목록에 집어넣고 관리했다.” 시카고병원에서 일한 부하직원의 증언이다. 그녀는 자신이 속한 조직을 10배 이상으로 키웠다.

육아와 가사를 둘러싸고 남편과 벌인 신경전은 버락을 두 딸의 아빠이자 남편이라는 현실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다.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2006년 버락이 상원의원일 때다. 그는 전화로 핵확산금지법 청문회 성과에 대해 아내에게 한참 떠들었다. 그러나 미셸은 그의 말을 자르며 계속 상기시켰다. “개미가 있어. 부엌에도, 화장실에도. 개미 덫을 사와.”

버락은 전화를 끊으면서 존 매케인과 같은 다른 유명 정치인도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 개미 덫을 사간 적이 있는지 궁금해졌다고 한다. 딸들이 어릴 때 미셸은 일부러 새벽에 헬스장에 가버렸다. 버락이 딸의 아침을 챙기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셸은 버락이 정계에 입문한 뒤 남편이 마틴 루서 킹 목사처럼 암살당하지 않을까 걱정해 강력한 경호를 요구했다. 또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딸들을 키워야 하니까.

버락은 항상 아내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렵다고 느꼈다. 2008년 대선 출마 때도 그랬다. 미셸은 참모에게 물었다. “(선거운동 기간 중) 버락이 주말마다 집에 올 수 있고 일요일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나요?” 그녀는 꼼꼼하게 확인한 뒤 결단했다. 남편의 출마에 찬성하면서 내건 조건은 하나였다. ‘금연.’ 버락은 그때까지 골초였다. 담배를 끊은 버락은 한 녹취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마누라가 무서워 죽겠어.”

저자는 이렇게 미공개 인터뷰, 각종 기사와 주변 사람들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미셸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책은 미셸이 중심이지만 버락이 성실한 아버지로 변화하고 책임감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모습까지 상상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또 미셸이 통과한 시대적 상황을 상세히 묘사해 그녀의 삶 한편으로 미국 역사가 그려진다. 미셸의 개인적 고백이 많지 않다는 게 아쉽지만 객관성을 담보하는 장점이기도 하다. 미셸은 남편 재임기 마지막까지 68%라는 높은 지지를 받으며 백악관을 떠났다. 그녀의 인생이 이 책에 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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