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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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신창호] 크리스천 밥 딜런

입력 2017-09-15 18:05:02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운데 밥 딜런 만큼 ‘이상한’ 취급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 시상식장에 얼굴을 비치기는커녕 수상소감마저 스웨덴 주재 미국 대사가 대독하게 한 본인 잘못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데 기인한다. 팝송 나부랭이나 쓰는 가수의 가사가 기라성 같은 시인과 소설가들의 작품을 다 제쳐버렸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들이 서점가를 휩쓸던 연례행사도 올해는 벌어지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딜런의 가사는 제대로 음미되지 않았다. 기껏 다뤄진 것조차 철없던 20대 시절 작품들뿐이다.

딜런은 기이한 행태로 유명하다. 남들이 칭송하는 자리엔 가는 법이 없고, 자신의 음악이 격찬 받은 다음엔 반드시 전혀 다른 방향의 작품을 내곤 했다. 음반을 가장 많이 팔았지만 돈 같은 건 관심조차 없었다. 그래미상 시상식에도, TV방송 토크쇼에도 나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1960년대 초반 그가 뉴욕에 등장했을 때 소위 ‘비트 제너레이션’은 열광했다. 유명한 시인이자 동성애자였던 앨런 긴즈버그, 반전반핵 가수 조안 바에즈 등등이 그를 히피 문화와 무정부주의의 총아로 여겼다. 하지만 딜런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긴즈버그류의 반(反)문화 조류에 결코 가담하지 않았다.

65년 뉴포트 페스티벌 무대. 정부 체제와 사법체계, 모든 종류의 제도를 거부하던 히피들 앞에서 딜런은 전자기타를 들고 나와 소박한 흑인 블루스를 불렀다. ‘삶의 주체는 오로지 나 자신’이란 거창한 주장이 난무할 때 그는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갑부의 무차별 곤봉세례에 맞아 사망한 흑인 여성 해티 캐롤의 외로운 죽음에 대해 노래했다.

‘폭풍우 몰아칠 때 당신은 내 쉼터가 되네(Shelter From The Storm)’ ‘죽음은 끝이 아니네(Death Is Not The End)’…. 수많은 노래엔 신(God)이란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사랑타령이나 난해한 몽상쯤으로 여긴다.

79년 딜런은 크리스천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슬로 트레인(Slow Train)’이란 앨범에서였다. ‘누군가를 위해 삶을 바쳐야 하고(Gotta Serve Somebody)’ ‘당신을 끝까지 믿으며(I Believe On You)’ ‘그가 돌아왔을 때(When He Returns)’를 준비한다고 말이다.

지난해 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열렸을 때 그는 작업복 차림으로 영국 런던의 소극장에 서 있었다. 유명한 상을 받는 일보다 자그만 규모의 뮤지컬 하나 만드는 게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30년대 미국 가정에서 벌어진 흑백 차별의 비극을 다룬 뮤지컬의 희곡을 수정하고, 자신이 만든 노래를 편곡해 삽입하고, 배우들을 연습시키는 일 말이다.

지난달 한 미국 대학교수가 ‘밥 딜런, 영성의 삶’이란 책을 펴냈다. 유대인이자 유대교도였던 그가 평생 동안 ‘왜 유대교의 여호와가 기독교의 하나님이어야 하는지’를 천착했다는 내용이다. 조만간 ‘밥 딜런, 복음으로 노래하다’라는 책도 국내에서 출판된다.

69년 첫아들 제이컵이 태어났을 때 딜런은 자장가 하나를 지어줬다. ‘영원히 젊기를(Forever Young).’ 하나님이 야곱에게 복을 내리는 창세기의 한 대목을 시로 쓴 것이다. ‘아들아, 하나님의 복이 항상 네 곁에 머물기를. 너는 영원히 그 가운데 젊기를!’ 몇 년 뒤 그는 자신의 잘못으로 이혼하게 됐고 사랑하는 아내, 첫아들 제이컵, 둘째아들 제스와 헤어졌다. 그리고 평생 결혼하지 않은 채 은둔했다.

수년 전 ‘딜런 역사가’들이 노래 하나를 찾아냈다. ‘온갖 치욕을 겪고도 이겨낸 당신의 눈을 보며 나는 웁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당신의 인도하심을 거절할 수 없고, 당신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고…. 당신을 사랑하는 것 빼고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그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80년대 후반쯤 만든 곡으로 보이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To Fall In Love With You)’의 한 대목이다. 노래에 등장하는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까. 고희를 훌쩍 넘긴 딜런에게 물어보고 싶다.

신창호 종교기획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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