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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산책] 암굴교회에 드리운 빛

입력 2017-09-19 17:55:01
강운구랄리벨라 에티오피아. 2014. ⓒ강운구. 한미사진미술관


오후의 강렬한 햇살이 고풍스러운 교회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건너편 절벽에서 교회를 마주한 사진가의 그림자가 화면 끝자락에 살짝 드리워졌다. 세월의 무게를 선연히 드러낸 암벽 속 교회, 절벽의 검은 사선, 그리고 인간의 그림자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인간이 만든 건축물에 신(神)의 시간이, 그리고 햇살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도도히 흐른다. 해가 설핏해지면 그림자는 더 길어지고, 교회도 어둠에 사위어갈 것이다.

선과 선, 그림자와 실체, 빛깔과 빛깔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사진을 찍은 이는 지난 50년간 ‘한국적 작가주의 사진’을 개척한 강운구다. 그가 포착한 에티오피아 랄리벨라의 암굴교회(Rock-Hewn Church)는 13세기 자그웨 왕조 때 건축물이다. 신앙심이 깊었던 랄리벨라왕은 “제2의 예루살렘을 만들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로하 암반에 11개의 교회를 지었다.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을 위에서 파 성소를 만들었다. 진격해오는 이슬람 세력을 피해 지은 암굴교회는 197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해마다 순례자들이 줄을 잇는다.

작가는 “현장에 가보니 까마득한 절벽에 밧줄조차 없었다. 햇살 속 암굴교회를 완벽한 구도로 잡으려면 절벽 끝자리여야 했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찍었다”며 “대상과 그림자가 느낌을 줄 때 그것을 알아채고 네모 틀(파인더)에 담는 게 사진가의 일”이라고 했다. 그의 암굴교회 사진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개막한 ‘강운구네모그림자’ 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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