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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희망, 세상 아닌 자신에게서 찾기를”

입력 2017-09-22 05:05:03
사진=김지훈 기자




어릴 적 별명이 ‘짬보’라고 했다. 혼자 화장실 가는 게 무서워서, 밥상에 계란 프라이가 없어서, 엄마가 집에 없어서 울었다고 한다. 잘 우는 아이는 어떻게 시인이 되었을까. 등단 25주년을 맞는 시인 강정(46·사진)이 자기 삶과 문학적 여정을 담은 산문집 ‘그저 울 수 있을 때 울고 싶을 뿐이다’(다산책방)를 냈다. 그를 18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어릴 때 몸이 약해서 누군가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어요. 그 흔한 개근상을 타본 기억이 없어요. 타인이나 세상을 두려워하는 감정이었는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많이 울었어요. 그런데 문학에는 현실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나만 누릴 수 있는 안온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밥 말리는 노래가 울음을 대신한다고 했죠. 음악도 좋아했어요.”

그는 문학 소년이었다. “꼰대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제가 어릴 때도, 지금도 세상이 (나를) 보살펴주지 않아요. 나는 시와 소설을 읽으면서 저 자신을 돌봤던 것 같아요. 요즘 청년들이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은 것 같은데 희망을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한테서 찾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어떻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날카로운 인상과 달리 시인은 동네 슈퍼 아저씨처럼 수더분하게 이런저런 얘길 했다. 젊은 시절 직장생활도 했지만 오래 하긴 힘들었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데 재미도 보람도 없었어요. 월급을 받으려고 회사를 다니느니 차라리 ‘거지가 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죠.” 책에는 한 여름에 사무실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크게 튼 뒤 권고사직당한 얘기가 나온다.

시를 왜 쓰냐는 질문에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요”라며 크게 웃었다. 이내 말을 고쳤다.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취직하고 결혼하고 집을 사는 데 가치를 두지 않아요. 가난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귀 기울여주지 않더라도 세상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끊임없이 공부하고 쓰는 데 소명을 갖고 있어요.”

강정은 1992년 등단 후 지금까지 ‘처형극장’ ‘키스’ ‘백치의 산수’ 등 6권의 시집을 냈다. 사랑을 소재로 한 시가 많다. 시인은 “세 번 정도 (자아가) 박살나는 경험을 하고 나니 사랑이 뭔지 조금 알 것 같다”며 “그 사람이 왜 그런 모양인지 잘 봐주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22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제3회 김현문학패를 수상한다.

글=강주화 기자, 사진=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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