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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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영석] 북한판 소녀시대

입력 2017-10-11 18:10:01


2012년 7월 6일 평양 만수대 예술극장. 7명의 가수와 10명의 연주자가 등장했다. 가슴 부위가 훤히 파인 튜브톱 미니원피스에 킬힐을 신었다. 영화 ‘록키’의 주제가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를 불렀다. 전자 악기의 경쾌한 음악에 선정적인 춤사위가 이어졌다. 모란봉악단의 첫 시범 공연이다. 북한판 ‘소녀시대’라고 불리는 모란봉악단은 김정은의 지시로 창단됐다. 은하수 관현악단 출신인 부인 이설주가 주도했다고 한다. 165㎝ 이상, 50㎏ 이하 기준에 못 미치면 탈락이다. 연애도 결혼도 금지돼 있다.

모란봉악단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걸그룹은 청봉악단이다. 2015년 7월 만들어졌다. 그리스 여신 스타일의 검은 드레스로 통일했다. 금관악기 위주다. 세미 클래식풍의 음악에다 간단한 율동이 곁들여진다. 김일성 시절 만수대 예술단, 김정일 주도의 왕재산 경음악단과 보천보 전자악단의 계보를 잇고 있다. 보천보 악단의 ‘휘파람’ ‘반갑습니다’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북한에서 활동 중인 공연단은 15개 안팎이다. 존재 목적은 한결같다. 인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김씨 일가를 향한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모란봉악단도 예외가 아니다. 2014년 9월 모습을 감춘 뒤 7개월 만에 인민문화궁전에 등장한 이들은 투피스 정장 차림이었다. 김정은 체제 찬양 노래가 마이웨이를 대신했다. 미사일 발사 때마다 방송에 등장했다. ‘단숨에’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른바 로켓송이다.

최근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모란봉악단 단장인 30대 현송월이 중앙위 후보위원으로 발탁됐다. 음란물 취급 혐의로 총살됐다는 설도 있었으나 고속 승진했다. 김정은의 옛 애인이라는 소문도 있다. 발탁 배경은 모르지만 음악도 통치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모란봉악단도 청봉악단도 또 다른 이름의 기쁨조에 불과하다. 북한 인민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모란봉악단의 화려한 율동이 아니라 오늘 당장 먹어야 할 양식이 아닐까.

글=김영석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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