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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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이지현] 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

입력 2017-10-13 18:05:01


“세상에는 소소한 일상의 일이 있는가 하면 세계사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도 있습니다. 행운의 시간이 있는가 하면 끝 모를 처절한 고통의 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세상은 주님의 손안에 들어있습니다. 엄중한 시간 속에서도 우리가 기도하면서 그 세상을 하나님께 들어 올릴 때, 세상은 우리 손안에도 들어있습니다. 바로 그 기도로 이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는 것,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을까요.”(헬무트 틸리케 ‘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중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기독교인들은 나치 정권의 공포정치,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는 연합군의 공습, 살던 집과 일터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무너지고 사랑하는 가족이 죽어가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불안에 떨었다. 그때 도시의 한복판 폐허가 된 교회 안에서 설교가 시작됐다. 독일의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저명한 설교자인 헬무트 틸리케(1908∼86)가 나치의 눈을 피해 가며 전한 ‘주기도문 설교’였다. 틸리케는 히틀러의 나치 정권을 비판해 교수직에서 해직되고 설교까지 금지당했던 행동하는 신학자이다.

당시 틸리케가 말한 주기도문은 평화로운 시절 습관처럼 암송하던 기도문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패전 후 ‘하나님 아버지’를 잃어버린 독일 국민들이 어떻게 아버지를 다시 찾고 또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전했다. 또 독일 국민이 당면한 전쟁의 참상이 하나님을 떠나 인간 자신의 힘을 의지한 죄에서 비롯됐다는 고언을 했다. 그 고통의 근원이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독일 국민 그리고 자기 자신에서 나온 것이란 고백이었다.

그런데 과연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흩어져야 하는 불안감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해야 하는 절박함 속에서 그의 설교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이 됐을까. 설교는 넘어진 무릎을 일으켜 세울 용기를 주었다. 그가 한 구절 한 구절 풀어가는 주기도문 속에는 2000년 전 그 기도를 처음 가르쳐 주시던 예수의 뜨거운 심장이 뛰었으며,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애절한 사랑이 전쟁으로 훼파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한반도는 북핵 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 불안감이 높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감각해진 영성을 깨우고 삶의 협곡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틸리케가 만약 지금 살아있다면 기도를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에게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시작할 것을 권하며, 무릎으로 기도하는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을 당부할 것 같다. 역사의 필름을 되돌려보면 위기 때마다 곳곳에 모여 세계를 부둥켜안고 기도한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기에 하나님은 이 땅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이다. 많은 교회와 단체에서 ‘나부터 변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슬로건이 입술이 아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고백이 되려면 진정한 자기갱신이 필요하다.

마르틴 루터의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그리스도인으로 돌아가자’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은 무명한 자 같지만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지만 살아 있는 자이며, 가난한 자 같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는 자라고 말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

절망과 시련으로 뒤범벅된 인생길에서 우린 기도하는 것을 종종 잊어버린다. 그러나 어떤 어려운 환경 속이라도 말씀을 묵상하면 말씀이 마음에 길을 만들어 줄 것이다. 많은 신앙인들이 말씀으로 마음의 길을 찾기 위해 기도한다. 이제 사도 바울의 인생 고백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인생 고백이 되고, 우리의 기도가 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가 되길 소망해본다. 우린 기도하는 무명의 그리스도인이다.

이지현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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