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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러시아 혁명, 예술의 혁명적 변화를 부르다

입력 2017-10-16 05:05:04

 
국립발레단 ‘스파르타쿠스’의 한 장면. 스파르타쿠스는 분노한 민중들이 봉기하는 모습을 군무로 비장하게 그린다. 국민일보DB
 
구소련에서 활동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그는 작품에 위장된 진실을 아이러니하게 담아 당국의 검열을 피했다. 국민일보DB


올해는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회민주주의 급진세력인 볼셰비키는 1917년 10월 혁명을 통해 러시아의 권력을 장악했다. 이 혁명의 궁극적 지향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에 근거한 공산주의 사회, 즉 착취와 계급 차별, 국가기구의 강제가 사라진 이상향의 건설이었다.

10월 혁명은 예술사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예술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제시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정책이 예술 활동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이상의 실현을 위해서는 예술과 문화도 중요한 일익을 담당해야 하며, 혁명의 주체는 예술가에게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라고 요구했다. 이 요구는 스탈린의 독재정치 아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더욱 강력한 예술 강령으로 자리매김 돼 다양한 예술분야에 적용됐고 그 과정에서 검열이 동원됐다.

그러나 이때 살아남은 예술이 무조건 스탈린 독재나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소비에트 정권은 귀족들이 향유하던 고전 발레를 청산하는 대신 민중들의 교양 교육과 이데올로기 선전을 위한 도구로 삼았다. 추방 예정이던 볼쇼이 발레단과 키로프(현 마린스키) 발레단은 덕분에 인민 예술단체로 존속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새로운 사회주의 작품들을 만들어도 민중들은 이해하기 쉽고 더욱 감동적인 차이콥스키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백조의 호수’에 더 열광했다. 이로 인해 기존의 전통 레퍼토리들은 사회주의 이념에 걸맞게 내용만 약간 수정된 채 보존되었으며, 오히려 과거 귀족에게 봉사하던 예술에서 인민 대중을 위한 예술로 확장된 보편 가치를 획득했다.

‘예술의 참된 정의는 편재하는 것이며, 거짓된 정의는 특정 기능에 부여되는 것’임을 간파한 쇼스타코비치(1906∼1975)처럼 영리한 작곡가는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아이러니로 채웠다. 아이러니로 위장한 진실을 담은 그의 작품들은 독재와 검열의 편협한 주파수를 벗어난 것은 물론,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지기 이전의 서방세계로부터도 호감의 대상이었다.

물론, 서방 세계라고 그 아이러니를 온전히 감지했다는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서방 세계야말로 예술을 기득권 계층의 옹호를 위한 암묵적 정치 도구로 활용해왔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확산됐고, 러시아 혁명과 마르크스주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모토 아래 제련된 서방의 예술적 가치들의 진의를 자가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9년 소비에트 체제의 붕괴는 독재에 오염된 이데올로기와 경제 시스템의 한계가 불러온 종말이었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증거로 지금도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보정하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유입 중인 복지 제도는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연관된 것이기도 하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국립발레단이 레퍼토리로 보유한 비장한 민중 봉기의 모습을 그린 소비에트 발레 ‘스파르타쿠스’, 세계 여러 연주가와 악단들이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 작품들은 아직까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며 러시아 혁명이 이상향을 위해 내걸었던 인류의 보편적 숙제, 즉 착취와 불평등으로부터의 해방이 미해결로 남아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상향’을 추구하는 순결한 의미에서, 러시아 혁명의 불꽃은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문화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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