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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에서 즐기는 황홀한 풍경·흥겨운 풍류

입력 2017-10-19 05:05:03
한반도 최남단인 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마을 선착장 옆 두 개의 작은 섬인 맴섬 사이로 떠오르는 해가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두륜산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본 해남군 삼산면 양촌저수지 일대 모습. 한반도 모양의 벌판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녹우당 앞 은행나무와 흙돌담.
 
갈대와 억새가 손짓하는 고천암호.
 
소리꾼과 화가의 콜라보 ‘남도 수묵 기행’.


전남 해남은 한반도의 등뼈가 마지막으로 불끈 치솟은 그림 같은 땅이다. 그래서 땅끝으로 불린다. 땅끝은 끝이 아니라 바다의 시작이다. 반대로 바다의 끝이자 땅의 시작이다. 새로운 희망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해남은 자연 경관의 경이로움과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황홀한 절경을 따라 풍류를 마음에 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희망의 땅끝, ‘명품’ 맴섬 해돋이

땅끝마을의 정식 지명은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다. 남도에서 가장 남쪽으로 툭 튀어나온 해남에서도 최남단에 자리한다. 생김새만 보면 여느 바닷가 마을과 다르지 않지만 ‘땅의 끝’이라는 상징성 덕분에 많은 여행객의 발길을 끈다. 특히 한해의 끝자락과 새해의 시작이 교차하는 시점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연말연시도 아닌 10월에 가장 주목받는 곳이 있다. 선착장 바로 옆 맴섬이다. 땅끝의 유명한 일출 포인트다. 대낮에 보면 평범한 자태에 조금 실망할 수도 있지만 이른 아침 해뜰 때 카메라 앵글을 통해 보면 달라진다. 이 장면을 담기 위해 전국의 사진가들이 몰린다.

맴섬 사이로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는 건 2월 중순과 10월 하순, 1년에 10여일뿐이다. 양력 새해의 첫 해돋이는 맴섬 사이에서 보기 어렵다.

황금빛 들판과 갈대밭을 한눈에, 두륜산과 고천암호

해남의 명산 두륜산을 쉽게 즐기려면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긴 케이블카로 아래에서 상부 역사까지 이어지는 케이블의 길이가 1600m다. 8분 정도를 올라가면 상부 역사에 도착한다. 이후 286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산책로를 따라 두륜산 봉우리 중 하나인 고계봉으로 올라간다.

전망대에 오르면 이웃한 강진, 완도, 진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내려다보인다. 한반도를 닮은 모양의 땅이 눈에 들어온다. 그 들판을 채운 황금빛 벼들이 황홀한 풍경을 내놓는다. 멀리 제주도 한라산도 시야에 잡힌다. 발품을 크게 팔지 않고도 남도 땅의 아름다운 산세를 한눈에 아우르며, 푸른 다도해 위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섬의 오밀조밀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화산면을 중심으로 해남읍과 황산면 일대에 자리한 고천암호는 1988년 고천암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생겼다. 165만2900㎡ 규모로, 국내 최대 갈대 군락지다. 둑 위에서 바라보는 갈대밭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다. 가을바람의 지휘에 따라 넘실거리는 갈대의 군무는 멀미가 날 정도로 아름답다.

이곳은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 따뜻한데다 주변에 넓은 농지와 갯벌이 있어 먹이가 풍부한 덕분이다. 매년 전 세계 가창오리의 90% 이상인 20만∼30만 마리가 겨울을 나며 환상적인 군무를 펼친다. ‘고천후조(庫千候鳥)’라 해 해남8경에 속한다. 군무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 초까지 해질녘과 동틀 때 펼쳐진다.

고산의 자취를 따라, 녹우당

해남 땅에 고산의 흔적이 강하다. 해남읍 연동리 녹우당이 대표적이다. 고산이 살았던 해남 윤씨 종택이다. 입구에 유물전시관이 있다. 2개의 전시관으로 나뉘어 윤선도와 윤두서의 작품을 비롯해 총 4600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해남 윤씨 가문의 전고하첩(보물 제481호), 윤선도 종가 문적(보물 제482호), 지정 14년 노비 문서(보물 제483호) 등 해남 윤씨의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눈에 띄는 작품은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제240호)이다. 서양 화법을 도입한 사실주의 작품으로, 화면 가득 얼굴을 채우고 머리 부분은 과감히 생략했다.

문지기처럼 우뚝 서 있는 키 큰 은행나무를 스쳐 지나 사랑채인 녹우당 대문을 들어선다. 효종이 고산에게 하사한 수원 집을 1668년 옮겨 지은 녹우당은 원래 ‘ㄷ’자형 안채에 이후 사랑채를 덧붙인 독특한 ‘ㅁ’자형이다. 서쪽으로 중앙에 3칸 대청을 두고 좌, 우, 아래로 방과 부엌, 창고 등을 적절히 배치했다. 안방의 아래쪽 부엌과 건넌방 부엌 상부에 설치한 솟은 지붕 형태의 환기용 구조물이 독특하다.

사방이 막힌 데다 마당이 좁아 한번 들어온 소리가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다. 뒷산의 푸른 비자나무들이 바람에 휩쓸리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녹우(綠雨)’ 소리가 잘 들릴 듯하다.

녹우당 뒤 덕음산 중턱에 500여 년 된 400여 그루의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있다. ‘뒷산의 바위가 드러나면 마을이 가난해진다’는 선대의 말씀을 받든 후손들이 잘 가꾼 숲이다. 이 비자나무에서 채취한 비자열매로 강정을 만든다.

녹우당 안채에는 현재 고산의 14대 종손 윤형식(84)씨가 거처하고 있다. 그는 때때로 손님들을 맞아 비자나무 열매 강정, 말린 생강 등 다과를 내놓고 유적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오래된 고택이 차(茶)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정겨운 사랑방이 된다.

한국관광공사는 ‘2017 전통문화 체험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통 유적이나 문화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명품 체험형 여행프로그램을 지원한다.

해남에는 ‘예술이 꽃피는 해안선…예술가와 함께하는 남도 수묵 기행’이 진행중이다. ‘예향’ 남도의 한국미술 전통과 정취가 살아있는 ‘남도풍류’와 ‘깊은맛’을 체험할 수 있는 ‘한국형 아트투어(예술여행)’. 1박 2일 또는 2박 3일 동안 큐레이터와 예술가가 동행하며 해설과 함께 수묵화 체험 등을 하고, 남도의 제철음식을 맛보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여행메모

고천암호 일몰 촬영 포인트는 연곡교… 푸짐한 한정식·해물탕 먹거리도 풍성


서해안고속도로 목포요금소를 지나 죽림분기점에서 서영암나들목 방면으로 나가 2번 국도를 따라 가다 남해고속도로로 진입한다. 강진무위사 나들목으로 나가 남성전 삼거리에서 우회전. 월산교차로에서 진도·완도·해남 방면으로 나간다.

해남에 들어서면 녹우당(061-530-5548) 이정표가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관람요금은 성인 2000원, 청소년·군경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고천암호는 황산면에 있다. 고천암방조제를 찾아가면 된다. 호수를 한 바퀴 돌다 보면 중간 쯤 나오는 다리가 연곡교다. 일몰 촬영 포인트다.

우수영관광단지에 가면 진도대교와 울돌목을 볼 수 있다. 또 우항리공룡화석지, 해양자연사박물관, 허준 촬영지 등이 있다.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를 찾아 여행을 계속하고 싶으면 땅끝에서 보길도행 배를 타면 된다. 보길도 부용동은 고산이 마음을 다스리면서 ‘어부사시사’와 같은 뛰어난 시가문학을 탄생시킨 섬이다. 땅끝 선착장에서 약 1시간 걸린다.

해남에는 이름난 한정식집이 많다. 읍내 한성정(061-536-1060)이 소문났다. 상다리가 휠 정도로 푸짐한 한상에 15만원이다. 떡갈비 정식을 내는 천일식당과 지은 지 100년이 넘는 한옥에서 영업하는 땅끝 기와집(061-534-2322)도 유명하다. 1998년 남도음식축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해남읍 중앙통 오거리 축협 맞은편 골목 안의 용궁해물탕(061-535-5161)은 보리새우, 세발낙지, 주꾸미·대맛·꽃게·석화·미더덕 등 해산물 30여 가지를 넣고 끓여낸다.

해남=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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